1-37. 정희네 선술집('나의 아저씨' 정주행 직후)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내 마음속 퇴근길에는 오래전부터 '정희네 선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지막한 풍경소리가 들리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그곳이 혼자만의 공간인 듯 무한한 자유를 느끼기도 했고, 오래된 참나무 테이블은 나만을 위한 지정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정희네'라는 이 동네에서 유일한 나의 안식처였다. 특별한 일이 있든 없든, 하루를 보낸 마음이 좋든 슬프든, 잠시라도 그 공간에 머물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정희네'에 들르지 못하는 날이면 꼭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하고 퇴근하는 것처럼 불안하게 밤을 지켜야 했다.
세월의 풍파와 함께한 '정희네' 빈티지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으면 늘 보이는 인물들은 비슷비슷했다. 대체적으로 출발과 결말이 예상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이 마주치는 타이밍에 미소를 던져주고 또는 잠잠한 공간을 환기시키는 누군가의 농담에 과장된 리액션을 해주기도 하고 또는 의도적으로 썰렁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 수많은 동네형들과 누나들 그리고 아저씨들의 인생사와 보통의 이야기들이 걸게 차려져 있는 참나무 테이블을 혼자서 지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를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은 풍요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직장과 집밖에 몰랐던 착실한 소시민이었던 친구들은 날마다 '정희네'로 모여들었다. 게다가 내 친형제, 의형제 그리고 사촌들도 제집처럼 그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뿐만 아니다. 동네 아저씨, 옆집 동생들 그리고 동사무소와 파출소 직원들 그리고 시장 상인들도 꼭 그곳에 와서 하루를 마감하려 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느냐? 진지한 말투로 현실 정치나 글로벌 이슈를 논한 것이 아니다. 곧 다가올 미래의 AI 세상을 상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오늘과 우리네 일상의 조각들을 털어놓고 거기서 비롯된 소소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노래했던 것이다.
'정희네'를 찾는 사람들은 모두 착했다. 그곳을 모르던 사람들도 한 번 두 번 찾아오면 점점 착해졌다. 마치 투박한 휴먼 드라마 같았다. 그래서 가끔씩 새로운 얼굴들이 그 신세계로 들어오면 아지트 식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관심은 이내 함께하고 있다는 위안이 되어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특별 이벤트에 빠져들게 되었다. '의리'와 '우정'의 온탕 속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정희네' 식구가 된 것이다.
'정희네'에서 먹는 술은 그 풍미가 달랐다. 다른 곳에서 먹는 술에 비해 더 달고 더 구수하고 더 끈적거리고 또 더 쓰게 느껴졌다. 술이라는 것이 그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달콤할 때가 있고 또 텁텁할 때가 있겠지만 말이다. 암튼 술이 달든 쓰든 싱겁든 독하든 상관없이 출입문을 열고 나갈 때면 술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정희네'라는 공간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이 공간의 따뜻함과 다정함에 흠뻑 젖은 채 각자의 집으로 흥얼거리며 돌아갔다. 하루하루가 '위로'나 '응원'이 필요했던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따스한 유혹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정희네'가 필요했다.
'정희네 선술집'에는 실제 정희가 없었다. 정희는 모든 사람을 사랑과 인정으로 대하는 상상의 여주인일 뿐이었다. 간판이었던 것이다. 실제 주인은 고모들이거나 이모들 혹은 엄마들의 공동체였다. 특히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양념해야 제맛이 나는 음식들은 대부분 각자의 집에서 조리해서 가져온 흔한 가정식이었다. 정희는 없었지만 '정희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를 신뢰했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래서 상상 속의 정희는 우리보다 더 빨리 늙어가기도 했고 또 점점 젊어지기도 했다.
나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정희네'가 있는 이 동네에서 살다가 돌아가고 싶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읍면동 소재지마다 '정희네'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정희네' 프랜차이즈가 방방곡곡에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든 찾아가도 편안하게 맞아줄 영혼의 아지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앞다투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안락한 위로의 공간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지금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꼭 '정희네'가 아니라도 좋다. '선희네'도 좋다. 아님 '희숙이네' 혹은 '미영이네'도 좋을 것이다.
P.S.
고항 마을에 가면 당산나무 어귀에 공회당이 있다.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여름이면 개울에 담가둔 수박을 꺼내어 큼직하게 썰어 내어놓고, 겨울이면 호박죽이나 김치전을 나눠먹는 곳이다. 그 공회당의 부엌 옆으로는 큰 식자재 창고가 있는데, 대형 냉장고가 2개 김치냉장고가 2개 그리고 4단 선반이 2열로 비치되어 있다. 그곳엔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들을 다듬거나 말려서 차곡차곡 쌓아놓았고, 그 반대편에는 국수, 마른 생선, 미역, 라면, 참치, 김... 등 먹거리들이 풍족하게 쌓여있다. 그 공회당을 지날 때, 굴뚝에서 연기가 나거나 가마솥이 끓는 소리가 날 때면 '어르신들 모두가 잘 살고 계시는구나'하며 안심을 하게 된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얽혀 있으며 얼마나 사무친 고통과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는지는 이제 누구도 떠올리지 않는다. 삶을 다 알아버린 어르신들은 그냥 오늘 하루를 편하게 즐기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 중한지 알고 있고 또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