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하늘
- 이승철
"서쪽하늘로 노을은 지고 이젠 슬픔이 돼버린 그대를 다시 부를 수 없을 것 같아 또 한 번 불러보네 소리쳐 불러도 늘 허공에 부서져 돌아오는 너의 이름 이젠 더 견딜 힘조차 없게 날 버려두고 가지 사랑하는 날 떠나가는 날 하늘도 슬퍼서 울어준 날 빗속에 떠날 나였음을 넌 알고 있는 듯이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언젠간 널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비 내린 하늘은 왜 그리 날 슬프게 해 흩어진 내 눈물로 널 잊고 싶은데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언젠간 널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비 내린 하늘은 왜 그리 날 슬프게 해 흩어진 내 눈물로 널 잊고 싶은데 가고 싶어 널 보고 싶어 꼭 찾고 싶었어 하지만 너의 모습은 아직도 그 자리에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언젠간 널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비 내린 하늘은 왜 그리 날 슬프게 해 흩어진 내 눈물로 널 잊고 싶은데 하지만 난 널 사랑해"
정말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6월의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기 전날 밤, 보름 후에 모임에서 만날 예정인 친구가 뜬금없이 이승철의 '서쪽 하늘'을 불러달라는 톡을 보내왔다. 5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월요일 출근길 특히 연휴 직후의 첫 출근 이 달갑지 않았던 나로서는 '뭔가 각박한 한 주를 설렘이나 기대감으로 보낼 수 있는 희망적인 요소'가 발견되길 바랐는데, 그 친구가 나의 마음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것이다.
이승철의 '서쪽하늘'. 실은 내가 이 노래를 공개적으로 부른 적은 없었다. 나름대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내가 한창 이승철 음악을 좋아했을 때는 순수한 가수로서 활동하던 시기였고, 그 시절에는 정말 많이 듣고 따라 불렀다. 그러니 내 청년기의 감성적 소용돌이에 크게 작용을 한 뮤지션 중의 한 명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뮤지션으로서의 일과 TV 예능인으로서의 일을 병행하면서, 이승철 음악을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패스하거나 삭제하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친한 형 때문이다. 다름 아닌 그가 이승철의 노래를 너무나 기가 막히게 잘 불렀기 때문이다. 그가 이승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면 마치 진짜 이승철이 한 공간에서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노래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색마저도 이승철과 판박이다. 그래서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할 때, 그 형에게 그 프로그램의 '이승철 편'에 꼭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형이 이승철 노래를 맨 처음 불렀을 때, 이승철의 노래는 그 형에게 모두 헌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마 그 후부터 나는 이승철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거 같다. 꼭 의도하진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친구의 한 마디로 인해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져야겠다. 내 인생에서 이승철 음악을 텅 빈 조각으로 둘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을 자극하고 응원해 준 감동적이면서 또 훌륭한 음악 아닌가? 그래서 월요일 아침의 스포츠센터 러닝머신에서부터 '서쪽 하늘'을 듣기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말할 수 없는 희열과 흥분이 밀려왔다.
기회가 된다면 보름 후의 모임 때까지 100번 이상을 집중하여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20번 이상은 따라 부를 것이고, 적어도 40번은 일상에서 흥얼거릴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기쁨이고,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특정한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일이 중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향해 '루치아노 파파로티의 ooo'을 불러달라고 요청해도 기꺼이 연습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에 내 스타일과 목소리를 입힐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렇게 소소한 준비와 도전의 과정이 모두 흥미진진하고 소중한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슬쩍 던진 한마디로 인해, 내 인생에서 이승철을 되찾아왔다. 그 형으로부터 혹은 편협한 사고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