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1박 2일의 자유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갑자기 당신에게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소중한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 같은가? 일단은 그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함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부터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여행의 조건이 누군가와 동행하지 않는 혼자만의 여정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자유에 대한 열망과 함께 어떤 막연함이 동시에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일상의 굴레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지만, 가끔씩 책상 달력을 바라보며 얼마 후에 찾아올 희망과 또 그다음 희망을 기다리며 버티게 된다. 그 희망들은 주말의 여유와 혹은 휴가를 활용한 리프레시 그리고 의도적으로 계획한 힐링의 시간들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에 진심으로 반응한다. 아니 그 시간들의 조각들 마저도 최대한 잘 맞춰서 활용하려고 애쓴다.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갈망하는 힐링이나 리프레시도 누군가와 함께 할 때라는 전제조건에 맞춰져 있다. 막역한 친구들이나 소중한 가족들과의 여행 혹은 동호회 등의 취미활동 또는 직장 동료들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대부분 특별한 동반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들과의 친밀감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안도하고 또 그들과의 공감대를 통해 더 잘 살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하는 많은 관계와 인연 속에서도 가끔씩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리에서 잠시 이탈하여 의도적으로 고독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물론 그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공동체의 습관에 익숙해진 무리의 구성원들이 개인이 고독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질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대인들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움직이고 함께 여행하고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여기서 갑자기 찾아온 1박 2일의 자유에 대해 그 시작과 끝을 독백해 본다.
'1박 2일 동안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혼자만의 여행이다. 이 얼마나 갖고 싶었던 자유와 고독의 시간, 아니 표 나지 않게 잔기스난 마음의 치유 시간인가? 지금부터 1박 2일의 여행을 계획해 보자.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이 자유를 치유로 만들 수 있을까? 일단은 여행의 테마를 정해보자. 숲 속 휴양림을 예약하여 피톤치드와 함께할까? 아니면 그동안 오르고 싶었던 산을 찾아갈까? 아니면 동해바다의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고 올까? 서해안의 배낚시를 알아볼까?
이번에는 '치유'를 테마로 정하자. 강원도와 충청권에서 숲 속 휴양림을 찾아보고, 빈방이 발견되면 바로 예약하자. 대형마트에서 미리 장을 봐서 갈까? 아니면 근처 맛집에서 해결할까? 혼자서 삼겹살/목살을 굽는 것은 궁상맞으니, 간단하게 예비용 간식거리만 사서 출발하자. 그래도 에어팟과 책 그리고 태블릿은 미리 챙겨두자.
어느덧 출발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설렘과 기대감에 신난다기보다는 순간순간 마음이 머뭇거린다. 이게 뭐지? 내 안의 무엇인가가 나를 현관문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 그 복잡한 마음속에 낯섦과 두려움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출발하자. 자유와 치유를 향해!
아파트 주차장을 통과하면서부터 일부러 크게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도착할 때까지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미처 두 곡을 다 부르지도 못한 채, 고질적인 교통체증을 만났다. 노래에 집중하던 나의 목소리가 확연히 작아졌다. 자동차도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리니 강이 보이고 큰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과 들이 만드는 풍경들은 언제 보아도 인간의 마음을 톡톡 다독여주는 듯하다. 이 풍경들을 한동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마도 그때쯤 정체가 풀려서 차도 신나 하고 또 내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휴양림에 도착하자마자 언덕배기의 작은 방인 '자작나무방'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언덕 위에 비스듬히 놓인 커다란 통나무처럼 보였다. 햇빛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나무들처럼 숲을 향해 손을 뻗은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 짐을 풀지도 않은 채, 그 테라스의 작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저 멀리 어디에선가 졸졸졸 개울물 소리까지도 들렸다. 이 신비로운 시간을 조금만 더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면, 바로 집으로 출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몰려왔다. 이 땅거미들은 예전부터 무슨 신비한 마술 같은 힘을 가진 것인지, 갑자기 마음속에 허전함이 몰려왔다. 저녁식사를 위해 맛집을 찾아 다시 이동하는 것조차도 귀찮아졌다. 그래서 간식거리로 준비한 컵라면과 참치 살코기 캔 그리고 맥주 1병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그것들을 다 준비해 놓고 먹으려는 순간 다시 서글픔이 울컥 몰려왔다. 수많은 장면과 수많은 사연들이 떠오르면서 입술이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꾹꾹 참으며 먹어치웠다. 아니 그 서글픔까지 삼켜버렸다.
산책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예상외로 주변이 온통 깜깜했다. 그래도 숲을 여러 번 통과한 공기는 이미 최고로 신선한 바람이 되어 내 머리와 가슴 그리고 팔목을 스치고 있었다.
숲 속의 방으로 돌아와 잠을 자려고 불을 끄자, 주변은 정적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계곡 끝에서 들려오는 나뭇가지들의 휘어지는 소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산짐승들의 한숨소리 같은 소리들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적막하고 쓸쓸했다. 아! 큰일이다. 잠이 오지 않았다. 왼쪽으로 5분, 다시 오른쪽으로 5분, 그렇게 몇 번을 뒤척이다가 결국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창밖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가로등 하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제대로 풀지도 않은 짐들을 가득 챙겨 들고 선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여행에서 계획했던 테마대로 자유와 치유의 경험은 짧게라도 성공했지만, 1박 2일의 솔로 여행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토록 원했던 1박 2일을 채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떠나기 직전에 슬그머니 돌아보니, 숲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어이! 친구! 자유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후에 언제든 다시 오시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