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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여름 청바지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몇 개월 전 어렵게 결정했던 일본 오사카 여행을 여러 가지 악재들이 한꺼번에 겹치는 바람에 전격 취소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약 30분도 채 경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주에서 열리는 부활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왜 일본을 취소하게 되었는지 또 우리는 무엇의 부활을 기대한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다소 찜찜하게 생각했던 가족이나 지인들의 영향이 분명 작용했을 것이며, '부활'을 중심으로 30년간 친구로 뭉쳐 살아온 우리가 '부활 콘서트'를 한 번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도 내심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당한 위약금을 감수하고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그 길을 선택했다.


부활은 우리들에게 매우 특별했다. 우리의 청소년 시절을 지배한 후 결국 우리의 인생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국내의 뮤지션들이 참 많이 있다. 들국화와 부활 그리고 조용필, 이문세, 이승환, 신해철 그리고 김광석, 임지훈, 안치환, 다섯손가락 등 모두가 훌륭한 뮤지션들이다. 그중에서도 부활과 들국화 그리고 넥스트는 좀 더 비중 있는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이미 일본 여행을 위해 비워놓은 일정을 부활과 함께하는 순간으로 격상시켜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더불어 중년이 된 우리를 부활에 빠져있던 20대로 되돌려 놓고 그 분위기를 다시 한번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늙고 낡은 마음을 가급적 젊은 기운이 나도록 연출도 하고 또 그 설정에 맞게 복장도 신경 써 보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약 20년 만에 청바지를 샀다. 그것도 여름에 입을 수 있는 얇은 청바지를 샀다. 콘서트 날짜가 올 들어 처음으로 '폭염특보'가 예보된 6월 말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거울에 비친 청바지의 모습을 보며 구매를 결정했다. 어쩌면 이번이 청바지를 장만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참에 청바지에 어울리는 하얀 운동화도 추가로 장만했다. 청바지를 샀으니 그 특유의 옷맵시가 날 수 있도록 신경도 써야 했다. 그래서 남은 보름 정도의 기간에 식이요법을 써서라도 뱃살을 좀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과정이 어렵고 번거롭다기보다는 오히려 설레기도 하고 또 재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드디어 D-day가 되었다. 우리는 태양이 가장 뜨거운 오후 3시경에 콘서트장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청바지의 촉감이 다소 어색하여 몸의 움직임마저 어딘듯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자 34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청바지로 인해 답답하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30년 묵은 기대와 감회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부활의 전성기와 부활의 초창기 앨범들의 임팩트를 생각하면 일찌감치 예상되는 일이었지만, 역시나 콘서트장에는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그 중년층의 사람들 중에서 나처럼 청바지를 입고 콘서트장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저절로 흐뭇해질 정도로 반가운 일이었다. 게다가 부활의 멤버들도 모두 블랙진을 입고 있었다. 시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청바지에 도전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왜 청바지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핏줄의 영향일까?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서 청바지를 입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참고해 주시라.)



콘서트는 2시간 내내 열광과 기쁨의 도가니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풍성했다. 그 뮤지션들도 중년이거나 이미 중년이 넘어섰는데도 말이다. 콘서트가 다 끝나고도 그 여운이 한참 동안 가시질 않았고, 우리는 마치 우리의 공연을 끝낸 것처럼 상기된 마음으로 뒤풀이를 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콘서트와 뮤지션들을 평가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의식에 갇혀버린 중년이다 보니, 합의를 위한 설득은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아니 합의가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저 이 술과 저 술이 콘서트의 여운을 촉촉하고 흥건하게 적셔주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눈이 떠지자마자 동네 목욕탕으로 갔다. 숙소 주변 시장 골목에서 10분 거리 내의 아무 목욕탕이나 찾아 나섰다. 실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가까운' 목욕탕이었다. 몇 분을 걸어가자 마치 생머리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목욕탕 하나가 보였다. 입구로 들어가자 적어도 한 달은 목욕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저씨가 약 50년 전쯤에 나 보았던 발목 열쇠를 하나씩 툭툭 던져 주었다. 당연히 카드 결제는 기대도 할 수 없었고, 부랴부랴 계좌이체로 합의를 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래된 로커는 삐걱거리는 소리만 요란할 뿐, 제대로 잠기지도 않았다. 우리는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며 난감해하며 눈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옷을 벗어 로커에 대충 던져놓고는 목욕탕으로 이어진 녹슨 유리문을 열었다.



아! 그 순간 놀라운 광경과 놀라운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하는 이문세의 '시를 위한 시'가 흘러나왔다. 온탕의 벽면에 장식된 대형 그림은 낡아서 떨어지고 또 떨어져 그 형체를 전혀 알 수가 없었고, 바닥은 강력한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의 묵은 때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렇게 눈은 놀라서 휘둥그레져 있었지만,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라는 조용필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흔치 않은 순백의 감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이 두 곡이 끝날 때까지 목욕탕 안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때 방치되어 작동되지 않을 것 같은 사우나 문을 열고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그제야 '부활의 감동'에 버금가는 특별한 감흥을 전해준 음악의 주인공이 그 할아버지의 스마트폰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운드가 빵빵한 고풍의 목욕탕에서 운 좋게도 20분 동안 명곡을 즐겼다. 아니 번갈아서 나오는 이문세와 조용필의 6곡을 따라 불렀다. 우리와 할아버지가 점유하고 있는 목욕탕에서 말이다. 할아버지는 모른 척 방치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우리의 조용한 떼창을 즐기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위험할 정도로 올드한 그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서 말이다. 우리는 잠시 온탕에 둘러앉아 끝내지 못했던 노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밖을 내다보니 할아버지가 옷을 챙겨 입고 계셨다. 그리고 그 순간 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통 넓은 청 반바지를 아주 느린 동작으로 입고 계시는 거였다. 내가 불편하다며 20년 동안 기피했던 청바지를 팔순에 가까운 할아버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입고 계시는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과 얼굴에 작은 미소들이 가득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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