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나에게 솔직해지자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가족일 것이다. 가정에서 느끼는 감정 상태에 따라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마련되었느냐 아니냐가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도 거의 가족과 비슷한 크기의 가중치로 일상의 풍요와 빈곤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혼자 혹은 둘이서 즐기는 여행,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일상에서의 소소한 관찰과 어떤 일에 도전하는 정신 등이 진정한 삶의 행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판단에 있어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남녀의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나 지독한 사랑을 해본 사람은 행복한 삶에 대한 후회를 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요인들도 참 많다. 그 가치가 개인의 직업과 연관되어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생계와 연관된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직업 이외의 분야에서 다른 가치들을 확보해서 저온창고에 콕콕 채워둬야 한다. 벌들이 꽃이 없는 겨울에 쓸 양식으로 부지런히 꿀을 저장하듯이 말이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바로 취미활동에서 가치를 찾는 일이다. 그 취미활동에는 땀과 사람이 있고 또 가르침과 조화로움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희망하고 있는 삶은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 혹은 책임감이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더불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기억될만한 흔적을 남기는 일도 좋다. 그것은 예술이라도 좋고, 어떤 업적이라도 좋고 혹은 모범이 될만한 정신이라도 좋다. 그밖에 무엇이라도 좋다.
그러나 위의 내용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거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약 50년 이상을 살아보니 개인의 행복한 삶에 가장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처럼 달관하지는 못했지만, 그 주제를 생각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 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것은 바로 '진실성'이다. 혹시 내가 현재 누군가에 의해 연출된 삶을 살고 있는지 혹은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꾸며낸 일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걸 파악했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지 아니면 힘들더라도 진실한 삶의 길을 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일상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연극 같은 삶에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따금씩 나에게 물어보게 된다. '너 지금 스스로에게 솔직한 거니? 이것이 네가 생각했던 행복한 삶이 맞는 거니?'라고 말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진실하지 않은 적이 없는지 혹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은 나를 모른척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말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도 스스로와 대화를 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와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회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자신과의 대화도 시도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결국 드라마 속의 특정 인물인 것처럼 혹은 내가 추앙하는 주변 인물과 비슷한 삶을 흉내 내며 살아가는 삶에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솔직해지는 문제는 어쩌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나에게 솔직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인들의 6월의 어느 토요일을 한번 따라가 보자. 출근하는 평소보다 약 1시간 더 누워있었지만 이미 눈이 떠진 상황이라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토요일의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흥밋거리를 찾아본다. 토요일에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싫기에, 인근 브런치 식당으로 향한다. 유사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비슷한 여유와 자격에 대해 안도해하며 앉아 있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또 나의 레벨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수단으로 골프연습장에 간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정말 오늘은 행운도 따라줄 거 같다. 아! 내 캐디백이 유행이 지났는데, 새 걸로 바꿀까? 저녁식사는 친구 부부와 함께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팔 할은 아이들 이야기다. 어느덧 술 마시지 않은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혹은 친구들의 속 사정과 피상적인 내용들을 파악한 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나의 고민을 생각해 본다. 난 누구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아직도 뒷주머니에 키핑 해 놓고 있는 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생각의 스위치를 내리고 TV를 켠다. 예능과 영화와 스포츠 사이를 한 바퀴 돌다가 결국 뉴스 앞에서 리모컨을 내려놓는다. '현실은 이렇게 퍽퍽하고 충격적인 것이야.'라며 백성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남은 토요일의 조각과 오전만 있을 일요일을 생각하며 나의 고민은 잊어버린다.
매일 이 세상으로 내보내는 나의 아바타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에 더없이 충실하지만, 스스로를 따뜻하게 들여다보는 기능을 장착하진 못했다. 내가 나의 아바타가 아닌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솔직해지려면 자주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물어봐야 한다. '너 지금 스스로에게 솔직한 거니?'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