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이상한 누나들(II)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일까? 내 주변에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늘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린 확률은 37.9%이며, 그중에서도 남자는 39.9%로 거의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암에 걸린다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통계자료에서 암에 걸릴 확률을 36%라고 봤던 것 같은데, 갑자기 2%가 늘었다. 그 이유로 내 나이만을 고려하기엔 정말 너무 많아졌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코로나19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누군가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최악의 지구 환경 때문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저 미지의 우주여행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인류가 아직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한 암으로 인해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하다.
주변의 암환자 중에서 내 친구 광현이의 와이프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은 우리 3인방 가족에게도 충격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와 많은 여행을 함께하며 온갖 추억을 쌓아왔던 가족과 같은 제수씨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에 열두 차례의 항암치료 프로그램까지 제대로 완수하고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밀착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들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데는 광현이의 누나들 도움이 크게 작용하였다. 내가 이러한 유사한 상황들에서 가족이나 친척 케어에 매우 적극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누나들의 정성과 진심과 배려와 사랑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들을 설명하기 위한 두 분의 마음과 행동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실질적인 케어를 위한 원거리 이동 상황으로 이를 대변하고자 한다.
현재 큰누나는 밀양에 살고 계신다. 그런데 작년 8월 초에 이 상황이 발생한 순간부터 최근에 종료된 열두 번의 항암치료까지 약 8개월 동안 거의 매주 고속열차를 타고 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셨다. 그리고 한번 올라오면 3박 4일 동안 광현이네 가사를 도맡아서 해결하면서 조카들까지 두루두루 케어해 주셨다. 게다가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었던 가족 전체의 심리적 조율가 역할도 해주셨다. 그 모든 것이 광현이와 제수씨한테는 얼마나 든든하게 작용했을까? 나는 솔직히 부모라도 그렇게 극진하게 케어해 주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태 이렇게 돈독한 형제자매 관계를 현실에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맙고 또 그럴수록 더 부럽기도 하다. 내 친구네 가족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족 간의 사랑이나 형제간의 우애에 대해 다소 과도하게 진심이었던 내가 이미 그런 형제애에 대해 절반은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상황을 특수하게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광현이에게 큰누나는 부모에 버금가는 엄청난 존재임이 틀림없다. 큰누나는 항암치료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열흘에 한 번씩 올라와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 집의 물리적, 심리적 케어를 계속해서 담당해주고 계신다.
작은 누나도 막상막하 수준이다. 작은 누나는 분당에서 멀리 떨어진 강서구 등촌동에 거주하고 계신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매주 반찬들과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서 광현이네 집으로 공수해 주셨다. 그 일주일 분량의 무거운 음식들을 들고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신 것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양역에 내려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7개 정거장을 이동하여 신논현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타서 다시 6개 정거장을 이동하여 정자역에서 내리신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광현이네 집으로 향하는 대장정이다. 그걸 8개월 동안 매주 반복하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피로감의 정도로 보면 밀양에서 오시는 큰누나와 거의 버금가는 수준이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누나들은 대단하다. 멋지다. 이상하다.
광현이와 나는 어쩌면 둘 다 막내 같지 않은 막내이다. 팔자에 없던 의무와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는 가족에 바짝 붙어서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같은 막내로서 나는 광현이와 같은 과도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비슷한 상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가만히 그 이유를 추정해 보았다. 결국 두 가지로 요약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광현이의 부모님께서 알게 모르게 온 가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거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큰누나가 형제자매의 맏이로서 직접 모범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동생들의 역할을 정리해 주신다는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모범 가족의 샘플이다.
광현이의 이상한 누나들로 인해 내 인생에 커다란 임팩트로 남을 감동을 받았다. 자꾸만 생각해도 자꾸만 뿌듯하다. 그리고 같은 막내로서 광현이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려면 집안일에 더욱 희생하고 가족들을 더 챙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게 다시 돌아와 이상한 누나들을 탄생시켰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