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오버한 헤드킥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Never'라는 이름으로 친구 6명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논다. 그렇게 놀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두어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했기에 이미 한국의 웬만한 명소는 다 가봤다. 모임을 할 때마다 특별한 대결 이벤트를 빼먹지 않는다. 그 이벤트는 볼링, 골프, 스크린야구, 탁구, 당구, 축구, 족구 등 대부분 구기종목이거나 혹은 펀치, 팔씨름, 닭싸움, 물놀이, 달리기 등 공 없이 맨몸으로 하는 놀이들도 있다.
한번 만나면 보통 1박 2일인데 특정한 테마를 정해놓고 만난다고 해도 대화와 술 그리고 그 테마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대결 이벤트를 구상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분위기 전환에도 효과적이고 또 재미도 쏠쏠하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안 해 본 종목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오래됐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마침 그 6명의 친구들이 70년생 3명, 71년 3명이라 편을 나누는 일도 쉬웠다. 그래서 33년간 이어온 개와 돼지의 숙명의 대결이 된 것이다. 이벤트는 가끔씩 승부욕으로 인해 진지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신경전으로 큰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장난과 실수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모임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 여행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일정부터 삐걱거렸다. 결국 중년 남성 여섯 이서 연고도 없는 충북에서 2박 3일간 먹고 노는 여행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첫날은 메인 테마로 부활 콘서트를 보고 청주의 먹자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는 이번 모임의 대결 이벤트인 스크린골프를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진행될 여정이 그리 마땅치 않아서였는지 그 이벤트 하나로 욕구가 해소되질 않았다.
그때 마침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공사 중인 다리 아래에서 공터를 발견했다. 그러자 누군가는 어느새 인근 문방구로 공을 사러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음료와 간식을 사러 마트로 달려가고 또 다른 친구들은 그 공터를 종합경기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감과 발재간이 필요한 신개념 놀이문화인 발골프를 했다.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한 재미있는 놀이였다. 우리 모두는 아쉬움과 놀라움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신나게 놀았다. 지나가던 행인들까지도 멈춰 서서 한참을 구경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걸로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결은 또 다른 대결로 이어졌다. 결국 한 친구가 혈기왕성한 50대 중년들에게 족구경기를 제안한 것이다. 게임은 예상했던 대로 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세트 스코어 1 대 1에서 2 대 2로 가더니 결국 결승전까지 갔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승부욕에 물든 나에게 결국 일이 터졌다. 평상시 같으면 인사이드볼임을 알고도 그냥 흘려보냈을 볼을 오버헤드킥으로 받아내려다가 그만 손을 잘못짚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오버한 수비가 성공이 되었고 친구들과 행인들의 박수소리에 매몰되어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그 순간부터 손목에서 통증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때 훌훌 털고 일어나 병원으로 갔어야 한다. 그러나 열광하는 만원 관중 앞에서 그 흥미진진한 대결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교체 선수가 없었다. 자의반환경반 참아버린 것이다. 게임은 모두가 지쳐 손들 정도로 계속되었다. 그리고 게임과 추가 게임을 모두 소화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앉았다. 곧바로 손목 통증은 현실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마칠 때쯤 되자 욱신거림이 심해졌다. 결국 전체 일정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운전을 해서 가는 길에도 오른쪽 손목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우리가 평상시 '집'이라고 말할 때 어떤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집에 도착하면 뭔가 해결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구급약통을 열어서 동전파스 덕지덕지 붙이고 근육이완제를 먹었다.
다음날 바로 병원을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회의와 회의의 연속에다가 악성 민원까지 발생하여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마음 한편에는 '정형외과에 가봤자 또 비싼 DNA 주사를 맞으라고 하겠지? 나의 신체 회생력을 한번 믿어볼까?'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이다. 이 나이를 먹고도 그런 오판을 했다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하면서, 혹시 비슷한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는 모두를 위해 나의 불편했던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다친 손목은 하루 이틀 내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어딘가 통증이 남아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오버하고 오판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도 양 손바닥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 허망하게 웃으면서 그 어색함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아침 운동 후에 샤워를 할 때는 타월로 등과 옆구리를 시원하게 밀어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젖은 몸의 물기를 닦을 때도 힘을 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도 왼손으로 문을 여는 어색한 동작을 연출해야 했다. 집의 현관문이나 주차장 출입문 그리고 회사의 대형 유리 회전문을 열 때도 왼손으로 열거나 그것이 버거울 때면 오른손 팔꿈치나 어깨로 밀어서 열어야 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젓가락질의 힘이 부족하니 맛있는 음식들을 제대로 집어 올릴 수가 없었다. 암튼 불편함과 어색함 투성이었다.
그리고 손목 부상 후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즈음, 거절하기 어려운 라운딩 약속이 생겼다.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날짜가 확정되자, 어떻게 해서든 스윙이 가능할 정도까지 손목을 회복시켜야 했다. 다시 부지런히 약을 먹고 파스를 붙이고 손목 보호대까지 착용했다. 한의원에 가서 침과 뜸 치료도 했다. 그래도 차도가 없다면 다음 주에는 '값비싼 DNA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바로 조치를 했더라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고생하지 않았어도 될 일을 스스로 긴 통증과 불편함을 자초한 것이다. 오버한 헤드 킥도 문제지만, 오판한 병원 진료가 더 후회막심하다.
인생에 이런 일이 이 한 번뿐이겠는가? 타이밍을 놓쳐서 혹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시간이 허비되거나 경제적인 손실을 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서도 부상당하거나 아프면서 병원을 찾지 않은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프지 않아야 정상적인 생활과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P.S.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있을까? 사회보장제도 중에서 의료분야만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1등 선진국일 것이다. 그 바탕에는 우리의 월급에서 꼬박꼬박 인출해 가는 의료보험료가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을까? 내 급여가 나에게 오기도 전에 미리 떼어갈 정도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당당히 이 선진국의 의료 혜택을 누려야 한다. 어딘가 갑자기 아프거나 또는 운동이나 일하다가 다치게 되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자. 나도 앞으로는 꼭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