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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그랜저에서 그랜저로 업그레이드하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이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개인적으로 각양각색이다. 누군가에게는 예쁜 여자가 누군가에게는 느낌이 없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멋진 남자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남자의 독특한 자세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여자의 특정한 신체 부위에 우선순위를 두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기에 각자가 느끼는 매력 포인트를 설득할 필요도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매력 포인트에 기초하여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이성을 선택하는 기준이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듯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도 개인마다 매우 다른 것 같다.


더불어, 이성에 대한 애착이 그러하듯 자동차에 대한 애착도 특별하다. 보통 10년 혹은 길게는 15년 정도 일상을 함께 보내고 여행을 함께 했던 자동차를 중고차로 팔거나 폐차를 위해 넘겨줄 때 마음이 짠하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통상적으로 보면 생애 가장 많은 시간을 운전석을 포함한 그 작은 공간에서 보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 차의 외형적 매력과 독특한 냄새에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 하는 말이다. 나도 약 9년 전에 정들었던 산타페를 누군가에게 보내면서, 한참을 어루만지며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라며 실제 친구와 대화하듯 말한 적 있다.




그 애착은 어쩌면 소시민이 누리는 인간적인 멋이다. 내 친한 형은 약 17년 동안 몰았던 현대 트라제 XG 차량을 끔찍이도 아꼈었다. 형의 곁에는 그 차량이 늘 함께하는 단짝처럼 느껴졌다. 그 트라제 XG의 트렁크에는 웬만한 살림집 수준의 각종 장비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지붕 위에는 루프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3열에는 캠핑 도구, 숙박 도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살림살이가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들끼리 어딘가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번개 여행을 떠날 때면 그 트라제 XG가 기본 운송수단이자 숙박시설이고 또 대형마트이면서 철물점이었다. 그 형은 차가 너무 늙어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한 상태에서도 그가 주는 매력들에 집착했다. 결국 또 다른 신형 SUV가 출고되면서 어쩔 수 없이 폐차장으로 떠나는 트라제 XG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한다.




또 내 동료 중의 한 명은 연식이 오래된 마세라티 중고차를 운행한다. 약 1km 떨어진 곳에서도 어떤 차량이 오고 있는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머플러를 통해 찢기듯 흘러나오는 엔진 소리가 굉장히 요란하다. 스스로 그 차를 빗대어 '기름 먹는 하마'라고 부른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차를 이용하고 보통은 주차장에 모셔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 골동품 차를 계속 타는 거냐고 물으니, '엔진음이 너무 좋아서요'라고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비슷한 엔진이 장착된 차를 추천했다. 물론 그 순간 솔깃했다. 나도 발바닥 감각이 무뎌지기 전에 한 번쯤 그런 고성능의 엔진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생각은 물 건너갔다.



내 오랜 친구였던 그랜저 HG를 헤*딜러의 누군가에게 보내고 이 회사를 퇴직할 때까지 함께할 그랜저 GN7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은 참 길고 험난했다. 최근 들어 전기차를 포함하여 다양한 매력을 자랑하는 신차들이 국내외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민의 과정에서 정말 신기한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9년 전 그랜저 HG를 구매할 때 경쟁했던 3대의 차량이 이번에도 동일하게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동안 수많은 신차들이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을 장착하고 앞다투어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랜저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고 그랜저가 가진 특징들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인가 보다.



그 이유는 먼저 범접할 수 없는 디자인 때문이다. 사람의 안목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유행처럼 바뀐다고 하지만, 나는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차 중에서 신형 그랜저의 디자인이 가장 좋다. 차의 성능이나 가격과는 상관없이 일단 디자인에서는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참고로 디자인 항목에서 경합했던 차량들은 렉서스 ES300H와 현대 G80 그리고 벤츠 E250이었다. 디자인 측면의 경합 속에서도 결국 그랜저 GN7이 최고의 스코어를 얻었지만, 그 외에 다른 평가항목들에서도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얻어 낙점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다. 3가지 차종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새벽이었다. 저 멀리 언덕길을 부드럽게 오르는 검정색 GN7의 Seamless Horizon 불빛 아래로 반짝반짝 빗물이 튀어 오르는 신비로운 광경을 보면서 이 차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떤 차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용성이다. 그랜저 GN7 캘리그래피에 3개의 옵션만 추가하면 풀옵션이 된다. 현재 인간의 기술력으로 구현 가능한 모든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게다가 하이브리드 차량이기에 약 18~20km의 연비를 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실용성을 어떤 차가 따라올 수 있을 텐가? 자동차의 기능적인 측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열거하면서 그랜저의 장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솔직히 내가 기술적인 부분에 취약해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청년 시절부터 몸에 밴 운전습관 중에서 고쳐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처음 출발할 때의 치고 나가는 힘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토크와 출력이 강력한 자동차는 지금보다 더 빠른 출발 가속을 즐기도록 나를 현혹할 것이 틀림없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맞게 신사의 정숙성을 즐기며 운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크 측면에서 약간 굼뜬? 차량을 선택한 것도 빠뜨릴 수 없는 한 가지 이유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 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나는 나일뿐이고, 내가 내 차를 선택하는 것이니 말이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적극 반대했다. 현대의 G80이나 벤츠의 E300을 가장 많이 추천했다. 이번에도 다시 그랜저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업그레이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실제 최근 들어 친구들이 차량을 구매하면 50% 이상은 레벨이 높은 외제차이며, 국산차를 구매하더라도 G80 수준이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들이 부러운 적은 없다. 왜냐면 내가 매력을 느끼는 자동차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성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도 없고 그들이 느끼는 매력을 흉내 낼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그랜저 HG에서 그랜저 GN7으로 갈아타는 것을 굳이 '업그레이드'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때문이고 그 기대치 때문이다. 지난번 그랜저 HG의 수준을 7.5점으로 봤다면 이번 그랜저 GN7은 9.5점이다. 그뿐이다.




P.S.

자동차에 대한 생각은 친구들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친구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그랜저를 구입하여 이용하다가 최근에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로 갈아탔다. 어느 모임에서, 잠시 자동차 관련 대화를 나눴었다.


'새 차 어때? 그 이름값 하더냐?'

'응, 정말 다르더라. 이제 그랜저는 못 타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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