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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쌓여가는 택배 박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6아침 출근길에 와이프가 들릴 듯 말 듯하는 목소리로 "저 물병들을 또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며칠째 고민이네"라고 말했다. 그 얘기인즉, 내가 며칠 전에 다이소에서 사 온 똑같은 찻병 3개를 두고 불평과 체념이 섞인 반응인 것이다. 솔직히 지난주에 우연히 구매한 찻병이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다이소까지 가서 3개를 더 샀다. 그러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놨는데, 와이프와 아들은 며칠째 쳐다도 보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들은 이미 나의 구매습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작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탄천을 트레킹 할 때 활용하거나 출근할 때 미숫가루를 담아 가기 위해 인터넷에서 물병을 6개나 동시에 구매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아직 태그를 떼지 않은 것이 3개나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습관화된 다량구매 습관으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보았던 일들도 많지만 이번 찻병처럼 활용도가 좋지 않으면 도저히 변명할 말이 없다. 그저 '좋은 물건을 구매하면서, 볼륨디스카운트 혜택을 누린다'는 궁색한 대답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매습관은 옷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양말은 보통 20켤레 정도를 언더웨어는 약 10세트를 한꺼번에 구입한다. 몇 해 전에는 여름용 트레이닝 긴 바지를 인터넷쇼핑으로 한꺼번에 5개를 샀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몽땅 의류 재활용품 부스에 던져 넣은 적도 있다. 반품 기한이 지날 때까지 방치했다가 계절의 끝에서 입어보니,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였다. 엉뚱한 사이즈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때 스스로도 마음에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의류 재활용품 부스 앞에서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던져 넣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오프라인 쇼핑을 즐기지도 않고 특정 고급 브랜드의 마니아도 아니다. 브랜드라면 거의 이월 상품이 대부분이고, 좋은 물건을 다량구매했다면 보통은 발품이 아니라 인터넷 품을 팔아서 획득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또한 우리 집에는 건강보조식품이 참 많이 쌓여있다. 그러니 와이프가 늘 이렇게 이야기해도 할 말이 없다. "당신이 건강보조식품들을 사다가 이렇게 온 집안 곳곳에 쟁여놓으면, 결국 내가 그것들을 먹어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어. 제발 건강보조식품을 구매할 때는 생각하고 또 한 번 더 생각한 후에 구매해." 그러면 나는 '그게 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 대량 구매를 하는 거야. 내가 안 먹으면 당신이나 아들이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둘 다 건강보조식품을 직접 구매하지는 않을 테니...'라고 마음속으로 대답을 한다.



게다가 우리 집에는 500ml 생수 박스가 보통 6개 정도 나란히 쌓여 있다. 두 박스는 삼다수, 두 박스는 백산수 또 다른 두 박스는 삼다수 무라벨 제품이다. 말하자면 가족 구성원이 3명이라 브랜드별로 각각 2박스인 것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원래는 한 브랜드의 생수 500ml짜리를 두 박스식 구매해서 먹었는데, 세 식구가 구분 없이 먹다 보니 아직 남은 생수병 6~7개가 식탁과 방 그리고 거실 탁자 등에 쌓이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컬러 고무줄을 사서 뚜껑을 딴 사람을 표시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생수의 브랜드를 달리해서 구입하는 것이었다. 선택의 폭은 넓으니까 말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씩 정착되어 가는 것 같다.



냉동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법성포 조기 및 냉동 오징어 등 해산물을 박스째로 주문하여 냉동실에 가득 보관한다. 문어와 홍어도 한 마리씩 사다가 소분 포장하여 보관해 둔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안주가 홍어삼합과 냉동 문어 슬라이스라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데 아들도 그 DNA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상황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작년에는 갑자기 다이어트를 선언하더니, 닭가슴살을 2박스나 묶음 구매를 하는 바람에 보관할 장소를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그걸 대놓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심지어 기차표를 예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왕복 기차표 1매씩을 예매하여 여정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당일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에 일정의 변화를 예상하여 돌아오는 표를 여러 개 예매해 놓는다. 평균 2시간 간격으로 예매한 후에 일정의 변동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티켓을 선택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이 다량구매 습관은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방법을 남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KTX와 SRT가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취소 수수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취미활동도 다량이용하고 있다. 열정의 크기 때문인지 관심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 먼저 골프, 야구, 탁구, 볼링, 족구, 스쿼시, 배드민턴, 러닝, 라이딩 등 각종 스포츠를 직접 즐긴다. 그리고 대학교 때는 밴드 활동을 하느라 12개의 F학점을 받을 정도로 음악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 후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또한 고등학교 졸업 시기에 'MBC 청소년문학상'을 출발로 20대 말에는 월간 문학지에 등단을 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다. 아마도 퇴직 후 노후의 삶은 음악과 문학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로움 속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또한 영화와 드라마광이기도 하다. 좋은 작품이라고 낙점하면 또 다른 세상에 빠진 듯 정주행을 즐긴다. 좋은 작품인지의 여부는 5분가량의 감상이면 충분하다. 심지어 한창 인기 절정인 드라마는 참았다가 종영된 후에 집중해서 즐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좋은 취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산책하는 것과 사색하는 습관이다. 결국 자연과 음악과 문학 그리고 스포츠와 고독이라는 인생의 다섯 친구와 다시 연결된다. 아니 그들과는 1년 365일 상시 연결되어 있다.




P.S.

어쩌면 코스트코라는 외국계 대형마트가 주변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곳의 물건들은 대부분 묶음판매 일색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의 대량 구매 습관이 그나마 이 정도 수준에서 컨트롤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쇼핑하며 다니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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