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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스포츠센터 진풍경들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매일 아침 6시 20분!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회사로 향하는 약 10분의 드라이빙은 나의 바쁜 일상에서 아름다운 계절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짧은 자유의 시간은 놀라운 24 절기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매일매일 다른 모양의 일출 풍경과 가로수와 구름과 하늘이 그리는 그림들 그리고 계절이 뿜어내는 거리의 냄새들이 내 하루를 응원해 주기 때문이다. 분명 응원해 주고 있다. 모두를 응원하고 있다. 다만 그 응원의 메시지를 알고 모르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그렇게 일상이 주는 혜택을 누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탓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절기와 계절 그리고 아침의 풍경과 공기는 누구에게든 오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벽을 내장 깊숙이 들이마신 후에 처음으로 도착하는 곳은 스포츠센터다. 그리고 그 제한된 공간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이 분을 처음 본 것은 몇 달 전 스포츠센터 출입구에서 엇갈리게 마주치면서였다. 잠시 스치듯이 지나갔지만 그 모습 자체가 독특해서 은연중에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허리가 꼿꼿한 상태로 신발장에 신발을 가지런히 넣고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아. 이 분은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이들과 유사한 스타일의 FM 생활을 하시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들처럼 팬티와 러닝셔츠도 흰색이겠지? 아니 어쩌면 속옷을 가지런히 개어서 락커에 보관할 수도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라커룸에서 그를 다시 만났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흰색 러닝셔츠에 흰색 팬티였다. 그리고 그 속옷들을 잘 개어서 라커룸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운동을 할 때도 그리고 샤워를 할 때나 양말을 신을 때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다.




또 어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은 매일 나와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작은 체구인데 오랫동안 운동을 해서인지 전체적으로 다부지게 보이는 체형이다. 그런데 이 분은 특이한 달리기 습관을 갖고 있다. 이 분이 러닝머신 위에 올랐는지를 입구 쪽에서부터 인지할 수가 있다. 러닝머신에서 달리면 저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쿵쾅쿵쾅 거리는 소리가 스포츠센터를 꽉 채우기 때문이다. 그 쿵쿵하는 소리가 너무 크고 또 자극적이라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가급적 그분과 멀리 떨어진 러닝머신을 찾아가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러닝머신을 차지하고 있을 경우에는 피해 다니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함부로 뭐라고 얘기를 건넬 수도 없다. 그저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 뿐이다. '무릎과 허리에 좋지 않을 텐데...'라고 말이다.




샤워실 옆의 파우더룸에서는 개인별로 다양한 습관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이들은 샤워를 한 이후에 물기를 닦지 않고 이리저리 바닥을 헤집고 다닌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거나 스스로 깨치기엔 아직 어린 나이 일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터득한 매너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파우더룸의 대형 거울 앞에는 '다른 회원님들을 위해서 혐오감을 주는 드라이기 사용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글이 군데군데 붙여져 있다. 그런데 그 공지글 앞에서 어떤 이는 헤어드라이어를 발가락에 대고 한 칸씩 한 칸씩 말리기도 하고, 겨드랑이에 헤드를 꽂은 상태로 말리기도 하고 또 매우 불편한 자세로 생식기와 항문을 말리기도 한다. 물론 멀찍이서 말리는 것은 상황에 따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대놓고 말린다. 이 작은 행동과 습관들이 각 개인이 살아온 날들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생각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큰 글씨로 써서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는 게 아니라고.



또 하나의 진풍경 중의 하나는 건강한 아침을 자극하는 소리들이다. 이 상황은 다소 원초적이라 난감한 장면이긴 하지만 어쩌면 또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제재할 방법도 없는 특수상황이다. 그것은 바로 거친 신음 소리다. 이따금씩 특단의 결심을 한 신입회원들이 등록을 한 후에 이른 아침부터 PT를 받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고통의 소리들 말이다. 대부분 운동을 안 하다가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하게 되면 시시각각 이런 원초적인 신음 소리들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PT를 받는 당사자는 힘들어서 내는 고통의 소리들이 스포츠센터의 아침 공기를 자극적인 신음 소리로 야릇하게 채워버린다. 나는 그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는데, 괜히 민망할 때가 있다.



쿵쾅녀를 피해 러닝머신을 찾아가다 보면 또 다른 벽과 마주하게 된다. 이 분은 50대 초반인데 정말 운동에 진심인 분이다. 매일매일 극한의 달리기를 한다. 옆에서 같이 뛰고 있을 때면, '이제 그만하시죠? 그러다가 쓰러지시겠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달리고 또 달린다. 오늘 이 목표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뭔가 사달이 날 것 같은 표정으로 지독하게 달리고 또 달린다. 그 표정 또한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주변 바닥은 그의 몸에서 떨어진 땀방울로 젖어버리고 옆에 있으면 그 뜨거운 열정에 따스한 온기가 후끈 느껴질 정도다. 분명 이토록 절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쉬어 가면서 하시죠'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한 분들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저 독특한 사람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매일 스포츠센터로 출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도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것이다. 그렇게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해져 있다.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운동 전율과 따뜻하고 차가운 샤워 그리고 그 후 일터로 향하는 상쾌한 시작에 중독되어 있다. 10년째 이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 기간 동안 매일매일 찾는 고정 멤버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결심의 결과물로 한 달이나 혹은 길어야 석 달 정도를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꾸준하게 실행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내가 작은 습관을 파악할 정도로 꾸준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렇게 오랫동안 매일 새벽에 운동을 하는데도, 획기적인 체형 변화가 있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20~30대 청년들이 몇 개월 바짝 집중하여 상체 근육이 탄탄해지는 결과를 보는 것 외에 이미 배가 나온 사람은 그대로 나와 있고, 이미 깡말라있던 사람도 좀처럼 살이 오르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매일 새벽 어김없이 스포츠센터를 찾는다.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내 몸을 위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지켜야 할 책임이다.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해서 외형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매우 미세한 정도일지라도, 몸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달리고 얼마나 힘껏 밀고 당기고 그리고 얼마나 반복해서 비틀고 들어 올리고 하는 그 동작들을 너무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순간순간들이 우리 몸에 모두 자동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P.S.


겨울이 되면 고질적으로 찾아오던 오른쪽 새끼발가락의 무좀이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그것이 찾아오는 계절이 왜 겨울인지 그리고 왜 오른쪽 새끼발가락에만 나타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약을 2~3일 정도 바르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그래도 샤워 후에 물기가 남아 있으면 왠지 그 못된 균들에게 이로운 생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찜찜하다. 그저께는 거울 앞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헤어드라이어를 발가락에 갖다 대고 15초 정도 말려주었다. 물론, 30센티 이상의 거리는 두었다.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들의 행동이 불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 유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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