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한여름 태양빛이 최고 절정에 치닫고 있었던 때부터 'OO 시민 독감 예방 무료 접종'이라는 정책이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플래카드가 설치되었고, 시민들 사이에서도 마치 대형 사회 뉴스처럼 회자되어 오고 있었다. 전 시민에게 독감 예방주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국내 최초의 일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현주소를 예측해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이 현상 자체가 씁쓸하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가나 정부 혹은 지자체로부터 얼마나 특별 혜택을 받지 못했으면 이런 웃지 못할 축제 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까? 소득세, 재산세, 의료보험, 국민연금, 주민세 등 온갖 세금들은 노동자가 월급을 받기도 전에 이미 1순위로 인출해 가는 상황인데, 혜택을 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우리 국민들은 시민체육행사에서 수건 한 장을 수령해 와도 매우 고마워한다. 그게 다 우리가 낸 세금인데 말이다.
그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새삼 '우리나라가 아직 이 정도 수준의 복지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구나'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거만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독감 주사는 무슨... 올해는 예년에 비해 운동도 더 열심히 했으니 감기쯤이야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는 체력은 될 거야'라는 생각 말이다. 다른 동료들과 지인들에게는 이 좋은 예방 주사 혜택을 놓치지 말고 가족 전체가 꼭 누리라고 홍보하고 다녔지만, 스스로에게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오만함에 대한 경고성 조치는 곧장 나를 직격 했다. 아직 11월도 되지 않은 어느 완연한 가을날이었다. 주말마다 해왔던 것처럼 탄천을 빠르게 걷다가 또 달리기를 반복했다. 1시간 30분을 그러고 나니 땀이 이마와 목덜미 그리고 등줄기까지 흘러내렸다. 그 젖은 상태에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가로운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낙엽과 나무와 하늘과 하천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당시 가을바람이 다소 쌀쌀하게 느껴졌고, 본능적으로 '감기에 걸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말의 저녁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좋아서 무시한 채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역시나 좋지 않은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감기에 걸려버린 것이다. 감기가 왔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와우... 이번에는 좀 센 놈인 거 같은데?'라는 불길함이 두려움과 함께 몰려왔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빠른 처방을 부추겼다. 이 만만치 않은 감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나만의 독특한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선택한 즉결 처방은 매운 오징어볶음과 소주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초기 감기에 대한 대처 방법이 그랬기 때문에 거의 본능적으로 그런 긴급 처방을 준비한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초기 감기에는 타이**이나 판*! 그래도 물리칠 수 없다면 라면에 고춧가루 듬뿍 넣어서 소주 1병을 벌컥벌컥 마시는 거였다. 그리고 수건을 목에 감고 이불속에서 땀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감기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자가 처방한 근거도 없는 민간요법으로는 턱도 없었다. 몸살과 기침이 주 증상이었는데, 불규칙적인 기침을 내 몸으로 흡수해 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한번 기침을 하고 나면 머리에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였다. '아! 코로나19 이후에 정말 쎈놈을 만났군!' 하면서도 '그래, 한번 대결해 보자!'라는 생각도 함께 했다. 그러나 그 오기는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에 KO 당했다. 꼼꼼하게 다시 마스크를 꺼내어 쓰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오십 대에 들어서자, 그동안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일들이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번에 경험한 독한 감기처럼 건강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예전과 다르단다'라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듯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치지 않았던 손목이 족구를 하다가 순간 삐끗하면 몇 개월 동안 불편하게 생활하고, 예상하지 않은 뜻밖의 동작으로 인해 담이 생기면 전체적인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겨울이 오면 눈이 건조해 인공눈물을 넣지 않으면 힘든 상황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감기와 같이 실제 몸이 아픈 일들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업무를 추진하거나 혹은 일상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뭔가 찜찜한 상황들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넘겨버리면 꼭 부정적인 결론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수정하거나 변경했으면 금방 해결되었을 일을 다시 처음부터 진행해야 하는 수고로운 상황을 만들어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인생을 좀 쉽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길러온 고집을 산책길에 조금씩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검증되어 있는 것들을 내가 어떤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이 참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찜찜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그것이 몇 번 반복해서 쌓이다 보면 금방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리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계획했던 일들이 완벽하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혹은 일상의 모든 순간들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철두철미한 자세를 취할 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건 있는 것 같다. 뭔가 불길한 예감 혹은 뭔가 찜찜한 상황 그리고 내 마음의 선과 악이 갈등하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좀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묵혀두거나 미뤄두면 산더미처럼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어떤 동료와 심하게 다투었다. 매우 친밀하게 지내던 동료인데, 업무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 직후에는 진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갈수록 그 불편한 상황이 오히려 내 마음에 짐이 되고 있다. 그때 바로 풀어버리는 시간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는 이미 감정이 섞여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것이다. 찜찜한 무엇인가를 마치 짐승의 방울처럼 가슴속에 달고 살아가는 것 같다. 찝찝하다. 아마 그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적으로는 잘 통했으니까 말이다. 적당한 시기에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이미 감기는 다 나았으니까 말이다.
P.S.
감기 증세가 너무 괴롭기도 하고 또 연차휴가도 많이 남은 상황이라, 오전반차휴가를 냈다. 그랬더니,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요한 업무 미팅이 있으니, 출근해 달라'라고 말이다. 감기로 인한 통증보다 더 예리하게 가슴을 찌르는 순간의 서글픔이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나서 약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달려가듯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