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든 '지금껏 살아온 삶에 큰 오점과 후회가 없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든 그 주어진 시간과 죽음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입장에 대해 대처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은 모범적으로 잘 살아온 삶의 표본일까? 아니면 다소 성급하게 자신의 삶을 평가한 후,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살겠다는 자세로 비춰질까?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보다 관대하게 평가하면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죽음을 맞이했으면 한다. 추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애써 품을 팔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50대 중반의 되니, 갑작스럽게 주변에 투병 환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어떤 선배는 그 현상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거야. 50년 이상 한번도 부품을 교체하지 않고 사용한 신체인데, 한두 군데 고장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다만, 개인에 따라 그 부품의 종류와 생활습관에 따른 내용연수는 조금씩 다르겠지'라고 말했다. 딱 맞는 해석이고 인정해야 할 현실인 것 같다. 그러나, 건강검진 후에 도착한 검사 결과서의 경고 메시지를 보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는 중년들에게 지인들의 투병 소식은 그 임팩트가 매우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씩 스스로를 시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미리 언급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삶이었다. 그러나 예상컨대 70세 정도까지 살면서 '부족했던 삶의 내공들'을 기르게 되면(그러니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잘했어. 잘하고 있어.'라고 관대한 평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 마련한 가족회의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특별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연명치료를 선택하지 말아 달라'라고 공시적인 선언을 했다. 더불어, '(획기적인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환자로 판정된다면, 미리 합의한 대로 세상과의 이별 수순을 밟아달라. 그 방법은 조만간 별도로 알려주겠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나의 장례식과 제사를 비롯한 이후 일들에 대해 유언의 형식을 빌려서 아래와 같이 선언했다.
-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존경하는 인물'을 적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역대 국내. 외 대통령이나 이순신, 칭기즈칸 등의 군인들 혹은 인류 역사에 유명한 정치인,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과학자 등을 적었다. 그러나, 나는 공란으로 두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착하다고 생각하는 분을 적었다. 내가 실제로 존경하는 인물들은 힘없는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분 혹은 정의를 위해 몸을 바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선생님이나 교수들 중에서 지속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분이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야! 이분은 정말 놀라운 능력자다.'라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하는 분, 그분은 이 세상과 인연을 마감하면서 위의 제목과 같이 말씀하셨다.
- 내가 평소에 작성해 둔 SSNotes를 열면 부고 리스트(Obituary List)가 있다. 그 목록에 있는 약 44명(업데이트할 때마다 1~2명 바뀌기도 한다)에게만 문자 혹은 전화로 연락하길 바란다. 그리고 정중하게 전해라.
"고인께서 직접 연락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조문은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인께서 꼭 전해 드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대를 만나 내 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했다.'라는 말씀입니다."
- 일체의 조의금을 받지 마라. 결혼할 때 2백만 원으로 출발하였으나, 여태 불편함이나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든 폐 끼치지 않고 소박하게 가고 싶다. 다만, 내 장례에 필요한 비용은 별도로 마련해 두었으니, 적절히 활용해라. 큰 돈이 필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직접 조문을 사양함에도 혹시 하룻밤 새 누군가가 찾아온다면 돌아갈 여비와 수필집을 한 권씩 드려라.
- 상상을 해봤다. 내 장례식에서 가족이 어떻게 하는지 혹은 문상객들은 누가 오고 어떤 반응을 하는지 또는 누군가가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가만히 누워 지켜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고통'이다. 돌연사든 예고된 사망이든 병원에서 사망이 확인되면, 최대한 빨리 화장해서 하룻밤만 집안에 두었다가 다음날 뿌려라.
(그 하룻밤 내내 미리 내가 선정해 둔 '나의 인생 베스트 음악 100곡'을 틀어라.)
- 아들아! 나의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읽어줘라.
- 여보! 홍어삼합 안주에 막걸리 한 병 준비해줘.
- 화장한 '재'는 지리산(담안)과 부산(이기대 해파랑길) 그리고 분당(불곡산 입구 쪽 **지정장소)에 한 줌씩 뿌려달라.
- 가족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나를 향해 절하지 마라.
- 삼우제, 49재를 하지마라. AI시대다. 세상은 이미 우리의 상조문화를 비웃을 정도로 변했다. 경조사비, 조문 예절, 삼우제, 49재 등을 포함하여 장례문화 전반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제사를 하지마라. 다만, 그날은 가족끼리 한자리에 모여라. 주변 맛집에 가서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또 오손도손 차 한잔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조상들의 노고와 은혜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판단과 행동의 이정표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