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삐지면 나만 손해다

(PP)

by 윤호준

얼마 전 회사 내 친목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균등하게 역할을 맡고, 또 균등하게 휴식과 음식을 제공받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고기를 굽고, 누군가는 식탁을 차리며, 또 누군가는 채소를 씻고 후식을 준비하느라 모두 분주했다. 준비가 끝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누군가 장바구니에서 숙취해소제를 꺼냈다. 그런데 참석자는 일곱 명, 숙취해소제는 여섯 개였다. 나는 얼른 말했다. “하나씩 드세요. 저는 따로 챙겨 먹으면 됩니다.” 그러자 여섯 명이 동시에 하나씩 집어 들더니 곧장 원샷을 해버렸다.


그 순간 우습기도 하고 약간 속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삐진 것이다. 물론 술자리였으니 각자의 건강이 우선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였다면 누군가에게 양보하거나 절반쯤 마신 뒤 병을 건넸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그런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친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삐져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별일이 아니다. 그들이 특별한 의도를 가졌을 리도 없고,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했을 리도 없다. 그저 본능처럼 자기 몫을 챙겼을 뿐이다. 결국 삐짐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건 나뿐이었다.


일상에서는 다르게 비칠 수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삐지는 사람들을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삐진다는 건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쳐 섭섭함이나 불만족이 생겼을 때의 감정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낯선 사람에게서는 잘 생기지 않는다. 가족, 친구, 애인, 부모처럼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대상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사랑과 신뢰가 있기에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가 의외의 결과로 돌아올 때 삐지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관계가 단절되기도 한다. 물론 그 삐짐 자체가 오해나 착각으로 빚어진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미디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삐짐이 인간관계에서 귀여운 반응으로 넘어가곤 했다.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재미와 흥미, 놀이문화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넘어 AI 시대다. 굳이 인간관계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단말기를 통해 거의 모든 욕구와 오락이 해결된다. 최소한의 소통만으로도 일상이 가능하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혼자라는 것이 익숙한 문화가 확산되는 중이다. 그러니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개인의 심심함과 호기심을 달래줄 요소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무궁무진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시대에는 삐질 이유가 없다. 삐지면 진짜 나만 손해다.




#1. 친목 모임에서의 삐짐

친구 모임이나 동호회에서 삐지는 것은 기분이나 경제 상황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런 모임들조차 이제는 실리와 직결된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누리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같은 회비를 내고 비슷한 기대를 가진 자리에서 삐져 있는 건 더욱 무의미하다. 결국 자기 손해일 뿐이다.


#2. 직장 내의 삐짐

직장은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형식적 관계가 필요한 집단이다. 동료 간 진정성 있는 협조 체계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더욱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예전처럼 상사를 안주 삼아 술자리에서 씹던 문화는 이미 낡았다. 이제는 직속 상사와 공감대를 얼마나 형성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어떤 미션을 함께 수행하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상사를 뒷담화하는 이는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삐지면 나만 손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3. 형제자매 사이의 삐짐

형제자매 간의 친밀도는 집안마다 다르다. 대체로 남자 형제는 사소한 일에 크게 삐지진 않지만, 한 번 틀어지면 회복이 어렵다. 반면 여자 형제는 자주 삐지고 다투더라도 금세 풀린다. 삶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기 때문이다. 삐지면 나만 손해라는 사실을 여자들이 더 잘 아는 것일까. 주변 가정을 보라.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4. 부부 사이의 삐짐

수십 년을 함께하면 부부는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그래서 삐지는 일은 사소한 한숨으로 묻히거나 삐지기 직전에 미리 대처한다. 상대방이 어떤 포인트에서 섭섭해할지, 어떤 상황을 참지 못할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늙어가는 상황이 중요한 것이다. 효심 있는 자식이나 좋은 이웃, 친구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를 향한 시선은 줄어들고, 등을 두드려 주는 일만 남기 때문이다. 부부의 삐짐은 그 자리에서 바로 털어버려야 한다.


#5. 싸움 뒤의 삐짐

누군가와 싸우고 화해하지 않으면 손해는 나만 본다. 다시 볼 일이 없는 사이라면 상관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다시 마주해야 할 사람이거나 모임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불편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된다. 세상을 넓은 아량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먼저 화해를 시도한다. 결국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고 더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계속 볼 사람이라면 삐져 있지 말고 받아들여라. 일정한 거리만 유지하면 된다. 기대치를 사람마다 다르게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뜻밖의 행운처럼 주어진 생명과 소중한 시간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보내느냐는 오롯이 각자에게 달려 있다.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결국 나만 손해다. 더 나아가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니 삐질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마음을 고쳐야 한다. 소통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삐져야 한다면, 한나절을 넘기지 말자. 삐지면 나만 손해이고, 결국은 모두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P.S.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2-6 삐지면 나만 손해다.png


이전 12화2-5. 나의 장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