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하원 후 시간, 그리고 조용한 선택
외로웠다.
남편은 늘 바빴고,
주변의 어른들에게서 돌아온 건
공감 대신
“엄마라면 원래 그래야 한다”는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선배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동네를 중심으로,
이미 알고 있던 인맥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많이가 아니라,
하나씩.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대를
나눠보고 싶었다.
곧 느끼게 됐다.
하원 후 시간은
우리가 준비했던 속도와
조금 달랐다는 걸.
아이들은 이미
하루를 꽉 채워 보낸 상태였고,
그 시간대에는
더 조용한 리듬이
필요해 보였다.
아이들은
하원 후 내내
나와 놀고 싶어 했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손을 잡아끌고,
버거울 정도로
내 곁에 붙어 있으려 했다.
나는 그 요구를
다 받아낼 여력이 없어서
잠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것들로
아이들의 관심을 옮겨두곤 했다.
그 사이
대화는 이어졌고,
아이들은
기다리는 쪽에 가까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편안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 결과는
늘 비슷했다.
아이들은 더 피곤해했고,
이유 없이 짜증을 냈고,
때로는
나를 더 찾았다.
하원 후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도,
나도
탈진해 있었다.
같은 처지여도 어려웠다
하원 후 시간이
너무 버거워서,
같은 처지끼리라도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시도해 봤다.
하지만
아이들의 기질 때문이었을까,
내 기질 때문이었을까.
결국
아이들도 나도
모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하원 후 시간을
바꾸기로 했다.
하원 후 시간은
오롯이
나와 아이들의 시간으로 두었다.
아이들이 기관에 있는 시간은
내 충전 시간이 되었고,
하원 후 시간은
다시
아이들의 시간이 되었다.
놀아야 할 아이와,
쉬어야 할 엄마가
서로의 리듬을
침범하지 않게 됐다.
결국
내 아이들과 나는
이 방식으로
평온을 찾았다.
물론 안다.
이 방법이
모든 아이에게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다른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내 아이의 기질과,
나의 기질에 맞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정답을 고른 게 아니라,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조용히 고른 것뿐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생긴 기준은 많았지만,
그중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남겼다.
그게
내가 한
조용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