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돈, 그리고 기준을 다시 정하기까지
아이를 낳고,
하루의 리듬이 바뀌고,
무엇이 중요한지도 달라졌는데
일과의 관계만은
예전 자리에 남아 있었다.
몸은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역할 하나만
과거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다시 같은 시간표로,
같은 밀도로
하루를 채우는 삶은
지금의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감각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일을 전부 내려놓은 것도 아니었다.
일은 여전히
삶 안에 남아 있었고,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일이 차지하는 위치가
이전과 같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붙잡지 않았고,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내 시간과 체력을
끝까지 써가며
유지해야 하는 방식의 일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게 됐다.
일의 강도를 낮추자
수입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건 분명한 변화였지만,
이상하게도
삶이 바로 흔들리지는 않았다.
미니멀을 시작하면서
물건에 대한 욕심이 먼저 사라졌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게 됐다.
그 결과
쓰지 않게 된 지출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덜 사고,
덜 비교하고,
덜 앞서가려 하자
지출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계속 채워야 할 이유도,
따라잡아야 할 기준도
함께 사라졌다.
그 대신
우리만의 시간이 늘어났다.
서두르지 않는 저녁,
아무 계획 없는 오후,
굳이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되는 하루.
돈으로는 환산되지 않지만
분명히
이전에는 없던 여유였다.
겉으로 보기엔
이 상태가
애매해 보일 수도 있다.
완전히 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돌아가는 것도 아닌 상태.
하지만
이 애매함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왜 이 정도만 하는지,
왜 이 속도를 선택했는지
계속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돌아보면
물건보다,
관계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
일이라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이걸
조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전체가 정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내려놓은 건
일 그 자체가 아니라,
항상 최선을 다해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오래된 기준이었다.
일은 남겨두되,
그 기준만
지금의 삶에서
조용히 빼냈다.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내 방식대로
삶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모든 가능성을
다 끌어안지 않고,
모든 시간을
일에 쓰지 않을 뿐이다.
수입은 줄었지만
욕심과 지출도 함께 줄었고,
그 자리에
우리만의 시간이 남았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만큼만
일을 삶 안에 두는 선택.
그게
내가 일과 돈,
그리고 삶의 기준에 대해 한
조용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