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관계가 늘어나는 일이었다

응답의 밀도와 공유를 줄이기까지

by 조용한 선택


결혼을 하면
내 편이 하나 늘어나는 대신
관계는 조금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가족은 줄어들지 않았고,
관계는 더 늘어났다.


갑자기 고려해야 할 사람이 많아졌다


결혼 전에는
내 선택이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는
말 한마디,
선택 하나에도
고려해야 할 사람이 생겼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정해진 분위기와
기대 같은 것들.
나는 그걸
센스라는 이름으로
먼저 읽어내고 있었다.


선택권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누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롭다고도 느끼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
괜찮아 보이는 쪽을,
편한 쪽보다
무난한 쪽을 고르게 됐다.
선택권은 그렇게
조금씩 줄어들었다.


도움이라는 말 뒤에 남는 것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관계의 밀도가 더 높아졌다.
도와주겠다는 말,
챙겨주겠다는 마음,
걱정이라는 표현들.
고마운 말들이었지만
그만큼
설명해야 할 것도 늘어났다.


모든 관계에 같은 밀도로 응답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관계에
같은 밀도로 응답하고 있었다.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했고,
나와 직접 관련 있는 일과
그냥 전달만 하면 되는 일에도
비슷한 속도로 반응하고 있었다.
지금 답하지 않아도 되는 연락에도
괜히 마음이 쓰였고,
조금 늦으면
서운해할까 봐,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그냥 바로 처리해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사소한 일에도 같은 무게를 얹는 습관


중요한 문제든
사소한 말 한마디든
나는 비슷한 무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건 그냥 흘려도 되는 일인데,
굳이 여기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혼자서 계속 곱씹고,
다시 생각하고,
괜히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게 배려라고 믿었고,
센스라고 생각했다.


공유를 줄이자, 응답도 가벼워졌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됐다.
응답의 밀도를 줄인다는 건
단순히
늦게 답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보다 먼저
공유하는 정보의 양을
줄이는 일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그동안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까지.
설명을 줄이면
오해가 생길까 봐,
관계가 멀어질까 봐
나는 먼저 모든 정보를
꺼내놓는 쪽을 선택해 왔다.


모든 관계에 같은 정보를 줄 필요는 없었다


공유를 줄이자
응답도 자연스럽게 가벼워졌다.
알아야 할 사람이
줄어들었고,
설명해야 할 상황도
같이 줄어들었다.
모든 선택을
중계하듯 알리지 않아도
관계는 생각보다
잘 유지되고 있었다.
모든 관계에
같은 깊이로,
같은 정보를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밀도를 조정한다는 것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지쳤던 이유는
관계가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관계에
같은 속도와 같은 온도로
응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모든 관계에
같은 밀도로 응답하지 않기로 했다.
급한 일에는 바로 반응하고,
그렇지 않은 일에는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모든 말에
같은 무게를 얹지 않고,
모든 기대에
같은 책임을 지지 않기로 했다.


관계를 줄이지 않고도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


관계를 끊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밀어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응답의 밀도와
공유의 양을
다시 조정했을 뿐이었다.
덜 말하고,
덜 공유하고,
그만큼
덜 응답하는 선택.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나는 처음으로
관계 안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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