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고,
내 가정도 분명히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딸로 살고 있었다.
이미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역할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설명이 따라붙었다.
왜 그렇게 사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왜 힘든지까지.
설명하지 않으면
무책임해 보일까 봐,
차갑게 보일까 봐
나는 먼저 말하고, 먼저 이해시키려 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역할은 너무 쉽게 유지됐다.
부탁이 아니라 기대였고,
선택이 아니라 당연함에 가까웠다.
나는 거절하지 않는 쪽을
습관처럼 선택했고,
그게 피로가 된다는 걸
오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건을 비우다 보니
원가족에서 딸려온 물건들이 있었다.
내가 고른 것도 아니고,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들.
그 물건들을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물건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걸 버리면
나중에 왜 줬는데 잘 안 쓰냐고
묻지는 않을까.
갑자기 찾으면
어떡하지.
이걸 버리면
부모님은 마치
자기 사랑을 내다 버린 것처럼
서운하고 슬퍼하지 않을까.
물건 하나를 앞에 두고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면들을
혼자서 미리 연습하고 있었다.
그 물건들이 비싸서도 아니고,
상태가 나빠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상태가 너무 좋아서
더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문제는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따라붙은
기대와 해석,
그리고 설명해야 할 몫이었다.
나는 결국
그 물건들도 비웠다.
오롯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물건만
남기기로 했다.
상태가 좋은 것들은
나눔을 하거나
기증을 하거나
판매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쓸모 있는 물건들이었고,
나에게는
이제 내려놓아도 되는
역할의 일부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비운 건
부모의 마음도,
기억도 아니라
‘딸이라면 이 정도는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었다는 걸.
그 이후로
나는 모든 선택을
설명하려 들지 않게 됐다.
미리 걱정하지 않고,
미리 변명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질문에
답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물건을 비운다는 건
그런 연습의 시작이었다.
가족을 버린 것도 아니고,
관계를 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감당하던 역할의 크기를
다시 조정하기로 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를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