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세상에 없대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치관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세요.
자기 자신의 가치관은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하세요. 그러면 정신적 평온함이 찾아올 겁니다.
-알베르트 키츨러의 <나를 살리는 철학> 中에서-
누군가와 다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보통 말한다.
"아니, 내가 이상한 거야?"
그리고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대단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다툼의 상대에게 나의 주장이 통하지 않는다면, 내 가까운 주변 지인에게 이른바 뒷담화(?)으로 나의 타당함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나에게도 아주 격렬한 경험이 있다.
회사에서 틈만 나면 조는 친구가 있었다. ‘집이 멀어 피곤해서, 몸이 아파서, 불면증이 있어 밤에 잠을 못 자서, 일이 없이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잠이 와서…’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했다.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괴로워하는 그 친구를 안쓰러이 여겼다. 하지만, 어쩌다 한번 조는 것은 대놓고 조는 것으로,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 자는 것으로, 급기야는 엎으려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회사에서 졸다니. 아니 급기야 대놓고 잠을 잔다니? 윗 선에서 경고를 주었지만 변화는 없었고, 그 친구의 그런 태도가 지속될수록 회사에서는 점점 신뢰를 잃어 더 이상 그 친구에게 업무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업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덕분에(?) 많아진 업무로 내가 열심히 일을 하는 와중에도, 그 친구는 옆에서 잠을 잤다. 깨워도 소용없었고, 관리자가 없을 때는 되려 왜 깨우냐며 눈치를 줬다. 뻔뻔함은 날로 커졌다. 그쯤 되니 부글부글 화가 났다. 기막히고 억울했다.
'아니, 내가 이상한 건가? 어떻게 회사에서 저렇게 잘 수가 있단 말인가?' 주위에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거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눈에 보이는 한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때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문구였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치관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세요.
자기 자신의 가치관은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하세요. 그러면 정신적 평온함이 찾아올 겁니다."
결국 나는 내 생각이 일반적이며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치관이라고 굳게 믿고 상대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고 누군가에게 이해받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너진 나의 정신적 평온을 회복하고 상대의 행동에 휘둘리지 않는 내 일상을 되찾는 거였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근무시간에 졸거나 자면 안 된다는, 내가 굳게 믿어왔던 가치관이 누구나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치관이라는 믿음을 버리기로 했다. '피곤하면 회사에서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구나.'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나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네가 맞아. 그 사람 진짜 이상하네.'라고 말하는 걸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고 옳다는 걸 매 순간 증명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인생에 해피엔딩과 같은 마무리는 없기에 내가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해서 그 친구의 행동이 변하거나 회사에서의 객관적인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 친구는 여전히 회사에서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나의 업무는 많았다.
하지만 내 안에 내면의 변화는 생겼다. 내 가치관을 나에게만 한정하기로 한순간, 그 친구에 대한 비난을 멈췄다. 그 친구의 태도를 비난하는 데 사용하던 에너지를 거두었더니,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비로소 그 친구로부터 자유를 찾았고 해방되었다.
p.s. 그리고 이듬해 그 친구는 월급 동결을 겪고 그 다음해 계약 연장 불가 통지를 받으며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후에 들리기로는 이직한 회사에서도 여전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