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

아, 얼마나 편할까

by 담하
위대한 아이디어는 혁신가에게서 나옵니다.
혁신가란 색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며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죠.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애쓰거나 모두와 같은 식으로 하려고 한다면 과연 당신이 내놓게 되는 건 무엇일까요?
모두와 똑같은 걸 내놓겠죠.

자기만의 고유성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따라서 누구도 진정으로 당신을 이해할 순 없습니다.
당신은 고유한 생명체이며, 누구도 당신 머릿속에 있는 걸 알 수 없고 당신이 행동하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 인생의 주인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웨인다이어 <인생의 태도> 中에서-


위 글에서 처럼 나는 정말 특별할까? 음, 나는 우유부단한 편인데.. 우유부단도 과연 특별함으로 취급받을 수 있을까?


나란 사람은 많은 사람과 함께 모여있을 때 튀지 않고 그림자처럼 잘 섞여있다. 아니, 어쩌면 잘 섞여 있다기보단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다는 말이 더 맞겠다. 어릴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 상담을 잘 들어주는 아이로 통하곤 했으니 타인에게 그려지는 내 이미지는 알 만했다. 나는 그런 나에게 큰 불만이 없었지만, 무리 안에 큰 목소리를 가진 이들 틈에서 경쟁에 밀렸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들의 먹잇감이 되어 들어주기만 해야 할 때는 조금 버겁기도 했다. 그래도 상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마치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쑥스럽지만 내심 좋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나 역시도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보통은 상대방에게 그런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늘 들어주는 쪽는 나였고 쏟아내는 쪽은 상대였다. 가끔 서운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맞춰주는 아이로 자랐다. 그게 편했다. 아니, 그게 편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배려가 상대방에게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나 당연함을 넘어 나를 함부로 대하는 누군가와 마주할 때면 슬픔과 자괴감이 들곤 했다. '왜 나는 그들에게 여지를 주었는가..' 자책도 했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를 맞춰주기만 하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원래 그런 성향이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않느냐고 덮어놓고 생각했지만, 정말 나에게도 좋은 거였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망설여진다. 결국 용기의 문제였다. 거절로 인해 돌아오는 상대의 원망과 질책, 미움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마음속에 '콕' 박혔다. 이 글귀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그럴 수 있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편할 텐데.'였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진정으로 홀가분하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도 못 해 본 무언가와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작은 변화가 일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봐야겠다고.


"당신은 특별합니다. 따라서 누구도 진정으로 당신을 이해할 순 없습니다."

어차피 그 누구에게도 진정으로 이해받을 수 없다면, 그 말은 즉슨 굳이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진짜 나답게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고유한 생명체이며, 누구도 당신 머릿속에 있는 걸 알 수 없고 당신이 행동하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 인생의 주인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이제라도 누군가의 기대와 시선에 맞춰 살면서 주객전도 됐던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보려 한다. 이것은 단연코 나 자신만 생각하겠다는 이기심이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여정일 뿐.


외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다시 내면으로 가져와서 그동안 놓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이제라도 다시 보듬고 나에게 집중하자.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고 더딜지라도 어긋났던 모든 것들은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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