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도 슬픔도 나누면 배가된다.

손을 내밀어도 잡지 않는 사람

by 담하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타인과 기쁜 감정을 함께하면 그 감정이 더욱 커지고, 슬픈 감정은 서로 간의 위로와 공감으로 한결 아픔이 덜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예외였다. 누군가와 슬픔을 공유한다는 건 왠지모르게 불편했다.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이었던 나는 타인에게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말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는 항상 과거형이 많았다. "사실은 그것때문에 힘들었었어." 고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뿐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지 못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 속 얘기를 꺼내놓을 기회가 적어 표현 자체가 서툴렀고, 또 어린 시절에는 혼날까봐 두려웠던 것도 같다. 결국 힘들다는 이야기에 돌아올 상대의 반응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고,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은 거부할 지에 대한 기준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것을 상대에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필요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채워지지 않으면, 표현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인해 결핍이 생기고 인생은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다미 샤르프의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에서는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인해, 자신의 욕구 표현에 서툰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 첫 번째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욕구를 갈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고 난 후에도 충만함을 느끼지 못해 여전히 결핍감을 느낀다고 한다. 영원히 만족될 수 없는 욕구를 갈망하며 허기지고 목마름이 더해 지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호의로 다가오고 자신에게 진심이었던 사람 조차 지치게 만들어 떠나가게 한다. 사랑을 확인받기 위해 애정을 갈구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대는 결국 지치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안타까운 결말로 대개의 관계가 마무리 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기를 아예 포기해버린 사람이다. 자신의 욕구가 수용될 것 같지 않다는 지레짐작의 마음으로 그 무엇도 희망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지나칠 정도로 독립적이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는 특성이 있다. 기대하면 실망하고 실망하면 아프니까. 거절당할 용기가 없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비겁한 부류다.


나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다. 손을 내밀어도 잡지 않는 사람. 상대가 내미는 손길이 오히려 부담이며, 상대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을 수 없어 받은 호의만큼은 꼭 돌려주어야 하는 사람. 빚지고는 살 수 없는 사람. 이런 나같은 사람에게 책에서는 이런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우선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문제는 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욕구를 일반화하거나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다는 점. 이것이 핵심이다."
-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中에서 p.81-


생각해보면 나도 늘 그랬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어떤 상황을 겪고 지나고 나서야 내가 좋았던 건지 불편했던 건지 뒤늦게 깨닫곤 했다. 그 결과 나는 항상 새로운 상황이 부딪치는 것을 힘겨웠고, 자연스레 그런 상황들을 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잘 알지 못했으니 인생이 즐겁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요즘은 나에 대한 리스트를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일상을 생활하다가 '아, 내가 이걸 좋아하는 구나.'하고 문득 깨달으면 핸드폰 메모에 저장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막연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사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었다. 한가지 예로 벚꽃이 그랬다. 어여쁘고 눈처럼 휘날리는 꽃비가 좋아 나는 1년 중 벚꽃 피는 순간을 늘 기다리곤 했다. 벚꽃이 만개하는 일주일 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벚꽃이 언제 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나를 되려 불편하게 하게 하고, 꽃잎이 떨어질 쯤이면 의무감에 산책을 한다는 것을. 이렇게 나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하나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산을 넘으면 두 번째 산을 넘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로써 잘 표현하는 것. 나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는 편이고, 대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 대응방식이 변한다. 상대가 말 수가 적다면 나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되고 상대가 말이 많은 편이라면 내 이야기는 자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와 무관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책에서는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과 '불평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짚어주며,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불평은 잘 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어려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영화 보기 싫어.", "난 집에서 TV보며 쉬는건 싫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오늘은 날이 좋으니까 영화관을 가는 것 보단,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 "오늘은 TV보지말고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불평이 아닌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상대방도 알아듣기 쉽고 내가 원하는 바를 잘 피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 갈길이 먼것 같지만 차근차근 해보려고 한다.


음성 지원이 되면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글로서 내 욕구 한가지를 표현해 보려고 한다.

"나는 글쓰기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게 어색하고 어렵지만, 오랜 시간 마음에 묵혀둔 내 감정과 시간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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