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에 놓아두지 않기
문득, 잊었다고 믿었던 오래된 과거의 잘못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를 돌아보면 미숙했던 순간이 유난히 많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한 겹 더 쌓이면 또 다른 미숙함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샌가 오래전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떠오르는 기억들을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기쁜 일보다 마음에 걸렸던 일들이 많다. 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 저질렀던 오래된 실수들과 다시 맞닥뜨린다. 그러다 보면 기억만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어쩔 줄 몰라하던 감정,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죄책감까지 함께 떠오른다. 회상의 결말은 늘 비슷하다. '내가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예전에 취미로 활동하던 모임에서 1박 2일로 MT를 간 적이 있다.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광란의 시간이 지나고, 숙소를 정리해 나오는데 남은 식재료 두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부터 손질이 필요한 채소까지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인원이 스무 명이 넘어, 고르게 나누기엔 어딘가 애매한 양이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가세요." 그 말이 흘러나오자 몇몇이 다가와 챙길 만한 것들을 집어 갔다. 그런데도 박스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다들 나서기 조심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애써 눈을 돌리는 건지, 식재료는 그대로였다. 그때 내가 나서서 "제가 다 가져갈게요."라고 했다. 우발적인 말이었다. 가져갈 사람이 없어 보였고, 그대로 두면 오히려 처치곤란이 될 듯도 했다. 게다가 당시 자취 중이었기에 어떻게든 쓸 일이 있겠지 하는 마음도 한켠에 있었다.
내 말에 돌아온 반응은 꽤 싸늘했다. "집에서 음식 잘 안 해 먹으면서, 과연 다 쓸 수 있겠어? 꼭 다 써야 돼." 몇몇의 그런 말이 마음 한켠을 스치자, 순간 내가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가져가고 싶지만 나서기 꺼려한 사람들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부정적인 반응을 마주하는 순간, 내 선택이 이기적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민망했고 당황스러웠다. 결국 가져온 식재료를 마주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앞서 냉장고에 그대로 두었고, 나중에 유통기한이 지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어딘가 마음 한쪽에 묘한 찝찝함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문득문득 그 자리로 나를 다시 데려가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굳지 나서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거의 10년이 지난 일이라, 이제 와서 말하기조차 민망할 만큼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그때의 장면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스스로도 답답했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마주한 것이 심리학 용어인 '자기중심적 편향'에 대한 내용이다.
자기중심적 편향이란 스스로 또렷하게 인식되는 자신의 모습이나 행동이 타인의 눈에도 두드러지게 보일 거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소소한 성취에 크게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또는 자잘한 실수에 당황스러워하는 만큼, 타인도 그것들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자기중심적 편향 덕분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느라 다른 사람이 잘한 것과 못한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p.182
-김혜영, 이수란 작가의 <모든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자기중심적 편향'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보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잘 보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고, 그래서 누군가의 앞에서 하게 된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크게 당황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타인도 대부분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나의 행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도 기억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내게는 크고 부끄럽게 느껴졌던 실수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일 뿐이라면, 더 이상 그 일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초점 착각'에 빠져, 이후 사람들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던 내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남들 앞에서 뭔가를 잘 못하거나 실수할 때, 우리는 그 부족한 행동만 보고 타인이 평가를 하리라는 과도한 초점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더욱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고 걱정되는 것이다. p.186
-김혜영, 이수란 작가의 <모든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MT가 끝난 뒤, 나는 '과도한 초점 착각'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때의 행동 하나로 내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관계는 점점 더 경직되어 갔다. 그때의 나는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평가가 결정될 것이라 믿었다. 그간 쌓아온 관계와 신뢰가 있었음에도,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이기적으로 기억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마음속에 쌓였고, 스스로를 점점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타인의 행동 하나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조금 까칠한 날이 있더라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하고 넘어갈 때가 있고, 성격상의 단점이 있더라도 장점을 더 크게 보며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도 많다. 결국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번에는 절대 나서지 말아야지 하며 위축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상황으로 돌아가 잘못을 곱씹고 막연한 자책감을 느끼기보다는, 당시 나의 판단과 행동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하면 그 기억이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떠오르는 기억을 막을 순 없겠지만,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반복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제가 다 가져갈게요."라고 대뜸 말하기보다는 "혹시 처리가 곤란한 거라면 제가 가져갈게요. 필요한 분이 있으면 다 가져가시고, 남는 부분만 제가 가져갈게요."라고 말했다면 오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선뜻 나서지 못했던 사람도 그때는 편안하게 필요한 것을 가져갈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반성은 하고,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자기중심적 편향'과 '과도한 초점 착각'에 빠져, 내 실수를 모두가 오랜 시간 기억할 거라는 착각, 그것 하나로 나를 향한 신뢰가 무너질 거라는 오해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에 놓아두지 않을 거다. 이제는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