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완전'한 선택을 바랐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후회했다.

by 담하

나는 모든 선택에서 후회 없는 ‘완전한’ 선택을 하고 싶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부터 오늘 점심 메뉴나 여행지 같은 소소한 선택까지,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기를 바란다. 내가 내린 선택이 언제나 나에게 이롭고, 타이밍도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해왔다. 남들보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나쁜 선택을 했을 때 뒤따라오는 결과가 두려워서인지 확실히 정의할 순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진로’도 한 길만 추구해왔다. 처음부터 옳은 선택을 해서 최대한 효율적인 삶의 루트를 걷고 싶었다.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며 다시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오래라 설령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하지 않더라도, 내가 정한 분야에서만큼은 꾸준히 일하고 싶었다.


완전함에 집착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언니에게 있었다. 친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언니는 자매라기보다 어른처럼 느껴졌고, 모든 일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놀이동산에 가면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야 했고, 관광지에서는 반드시 모든 곳을 섭렵해야 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언니는 MBTI ‘J(파워 계획형)’이었다. MBTI의 ‘P(무계획형)’성향을 가진 나에게 언니는 대단한 존재였고, 나 자신은 어딘가 허술하게 느껴졌다. 으레 언니를 가진 많은 여동생이 그러하듯 나는 자연스럽게 언니를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닮고 싶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함을 갈망하던 나는 우유부단해졌다.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과, 모든 선택에서 완벽을 바라는 마음은 결정을 내리는 순간마다 나를 멈추게 했다. 하지만 인생에 필요한 결정을 마냥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할 때마다 장점과 단점을 쭉 나열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은, 결국 모든 선택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장점만 있는 선택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선택을 하든 아쉬움이 따라왔다. 그렇기에 무엇을 선택하는 일 자체가 내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나에게 일침을 가하는 심리학 용어가 있었다. 바로 '극대화자'와 '만족자'에 관한 내용이다.

'극대화자 Maximizer'는 자신이 하는 모든 구매나 결정이 반드시 최고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좋은 가격에 선택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대안 탐색과 의사 결정까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혹시라도 더 좋은 대안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반면 이에 상응하는 다른 축이 '만족자 Satisficer'인데, 이들은 뭔가 구매하거나 선택할 때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준에서 탐색을 멈추고 의사 결정을 한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만족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더 좋은 대안을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덜하다.

-김혜영, 이수란 작가의 <모든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나는 극도의 ‘극대화자’였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가디건을 쇼핑한다고 하자. 나는 핸드폰에 깔려있는 모든 쇼핑몰의 가디건을 하나하나 살펴본 후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따져서 내린 결정이 과연 좋았는가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실물을 받아보면 디자인이나 재질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고, ‘다른 제품을 샀어야 하지 않았나?’, ‘직접 착용해보고 살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여행지에서 숙소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숙박 앱에 등록된 근처 모든 숙소를 섭렵한 후에야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그때는 안심이 되었지만, 결국 모든 선택에는 허점이 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나는 간과했다. 나는 점점 변수에 취약해지고, 선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며, 결정을 내린 뒤에도 ‘정말 잘한 선택일까?’라는 확인 과정에서 피로를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에서 오는 피로감보다 나를 더 억울하게 한 것은, 바로 ‘최고’를 선택한 ‘극대화자’가 ‘최선’을 선택한 ‘만족자’보다 만족도가 낮다는 사실이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극대화자’보다 ‘만족자’가 선택의 만족도는 높고 선택 후의 불안은 낮다. 후회하지 않을 최고의 만족을 얻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극대화자’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만족하는 ‘만족자’들에 비해 만족도는 낮고 후회는 높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극대화자’들이 ‘만족자’들에 비해 삶의 만족도나 행복도도 더 낮다고 한다.

-김혜영, 이수란 작가의 <모든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나는 행복하기 위해 완전한 선택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노력이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완전함을 추구했건만, 그 집착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은 후회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완벽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지만, 충분히 좋은 선택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선택을 내릴 때 완벽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최고’의 선택보다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다. 마음속 작은 여유를 품고,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언니를 닮으려 애쓰던 과거와 달리, 이제 나는 내 방식대로 계획하고, 실수와 변수를 받아들이며, 나만의 길을 걷겠다.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아도 마음은 편할 수 있는 때가 올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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