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존재감 없던 두 번째 발가락의 소중함이란...

by 담하

나는 요가를 참 좋아한다. 요가는 몸 훈련뿐만 아니라 마음 수련까지 함께할 수 있는 유익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심신의 여유로움과 안정에 도달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요가처럼 잘 맞는 운동도 없었다. 요가에 대한 애정은 '1일 1요가'의 루틴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 시기라 약속을 잡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퇴근 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늘 요가 수업을 1시간 듣고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토요일도 가능하면 요가를 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주말 일정을 보내곤 했다. 요가하는 시간은 하루 중 나의 유일한 힐링시간이자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토요일 수업을 듣고 난 새벽녘에 난데없이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려고 누워 뒹굴 거리는데 갑자기 묘하면서도 애매하게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살짝 부어있었고 움직이려고 하자 통증이 몰려왔다. 통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면, 원래 일직선으로 바르게 붙어있어야 할 뼈마디가 어긋나게 붙어 있는 것처럼 구부릴 수도 펼 수도 없는 상태였다. 발가락 통증보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대로라면 1일 1요가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요가는 본디 앉아서 하는 동작뿐만 아니라 서서 하는 동작들이 많았다. 한 발에 체중을 싣고 나무처럼 균형을 잡거나, 날아오르는 학을 연상시키는 고난도 동작들 말이다. 두 번째 발가락이 부어 한 발로 서있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이대로라면 수업을 듣기 힘들 것이었다.


요가를 하며 나름대로 마음수련을 오랜 시간 해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밀려오는 우울감과 왜 조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자책감을 어찌할 길이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 부딪힌 기억은 없었다. 의심되는 것이 있다면 백신을 맞은 지 3일 차이던 바로 당일 오전 요가 수업을 들은 것뿐이었다. 며칠간 누워있었더니 몸이 너무 뻐근하였고 더불어 요가 생각이 간절했더랬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게 정말 무리였던가보다. 평소에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없던 두 번째 발가락이 자신의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은 안타깝지만 이미 늦어버렸을 때가 많다. '내가 널 그간 소홀히 대했구나.' 반성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통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평소엔 소중함은커녕 존재 자체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다가 통증이라는 신호를 받고서야 다급해져 그 안위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이 얼른 낫기를, 그것만 낫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통증이 무뎌질 때쯤이면 우리는 다시금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다. 간절했던 순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소중함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다. 아마 나는 통증이 다시 찾아와야 알아차릴 것이다. '아프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노라고 말이다.


복거일 작가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에는 어느 시기에는 몹시 소중했던 것이 한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을 잘 묘사한다. <비명을 찾아서> 소설은 두 권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1945년 대한민국에 광복이 오지 않았다면을 가정해 일제 치하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일제의 탄압으로 며칠간 유치장에서 살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그 유치장 창살로 보이는 작은 하늘 한 조각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치장을 나가게 되었을 때,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 그 창문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창살에 걸린 사늘한 초겨울 하늘이 눈에 들어오면서, 한 줄기 아쉬움이 가슴을 스쳤다.
그렇게도 소중했던 그 하늘 한 조각이 이젠 아무런 뜻도 지니지 못한 것으로 되는 것이었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중에서-


그렇게도 소중했던 것이 이젠 아무런 뜻도 지니지 못하다는 말이 왠지 서글프게 다가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게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애정을 많이 주었던 것은 잊기 쉽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순수하게 애정했던 그때의 그 마음을 떠올리면 괜스레 미소 짓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모르고 함께했던 것들을, 가끔은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이 여유진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만족스럽지 않은 것에 불평하기보다는,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고마운 것들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며 살고 싶다. 그래야 아프기 전에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소하지만 감사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오늘은 이렇게 글을 쓰게 해 준 나의 손가락들에게 감사하고 카페에서 처음 시킨 메뉴가 나름 괜찮았음에 감사하고 3일 동안 골골대게 만들었던 독감이 한결 나아졌음에 감사한다. 감사함을 품고 살고 싶다.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내면이 조금 더 따뜻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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