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불쾌한 '감정'을 만든다.

감정은 생각에 대한 반응

by 담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길, 옆 팀의 한 직원과 마주쳤다. 그 직원은 나와 직급은 같지만 창립 멤버에 가까운, 회사의 터줏대감 같은 사람이었다. 평소 무표정한 편이지만, 내가 먼저 인사하면 받아주기는 했었다. 오늘도 눈이 마주친 것 같아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순간 ‘뭐지?’ 하는 마음과 함께 당혹감이 올라왔다. ‘내가 인사하는 걸 못 봤나, 오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짧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차마 다시 한번 인사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말없이 돌아섰다.


비슷한 감정은 다른 상황에서도 반복됐다. 업무 요청을 위해 한 직원과 메신저를 주고받다 본격적으로 업무 요청을 했는데, 그 길로 답장이 끊겼다. 메시지를 읽은 것이 분명하고 나의 마지막 메시지는 마무리 멘트가 아닌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바쁜가 보다고 생각하며 넘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불안한 마음을 걷잡을 길이 없었다. 메신저 알림이 울릴 때마다 괜히 화면을 먼저 확인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오지 않은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닫았다. 그렇게 하루가 넘도록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바빠서 답장을 잊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다음 날 다시 메시지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사과도 설명도 없는 “무슨 일이죠?”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이런 순간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익숙한 속삭임이 고개를 든다.


‘널 무시해서 그래. 네가 만만한가 봐.’

자의적 판단이며, 과도한 해석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를 좀먹는 생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는 말이다. 하지만 감정은 이성을 매 순간 뛰어넘는다.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들로 마음이 시끄러워질 때는 ‘왜 저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이들이 부럽다고 생각된다. 그런 성격이라면 인간관계의 피로함이 더 적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예민함을 타고났다. 상대의 표정, 몸짓, 말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을 덧붙인다. 그래서 상대의 무례함에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의심한다.

‘혹시 내가 과민한 건 아닐까, 이런 게 피해의식인 거 아닐까?’


주로 이건 '누가봐도' 나쁜 의도가 아니냐고 생각하곤 했다. 먼저 생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머리가 없다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은 생각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다. 울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심장 박동수가 늘어나거나 하는 여러 감정 반응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나의 사고중추로부터 신호를 받지 않는 것은 없다. 사고중추가 손상되거나 파손되면 감정 반응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뇌가 어떤 식의 손상을 입게 되면 육체적 통증마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 중에서-


결국 내가 느꼈던 불쾌함 역시, ‘무시당했다’는 해석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그 해석이 기억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사건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게 했다. 그 해석들은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기보다, 아주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다. 사실보다 부풀려진 생각은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나를 이끌었고,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 생각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간부터, 나는 사건이 아닌 스스로를 무방비하게 저울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석하려는 부정적인 내 생각들과 거리 두기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습관적인 해석은 ‘왜?’라는 의문을 쉽게 놓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로 인해 기억을 곱씹는 일이 많은 편이다.

‘왜 인사를 받지 않았을까, 왜 메신저에 답이 없었을까’

애매한 상황을 그냥 두지 못하고 끝까지 해석해 이해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더 불편한 감정에 몰아넣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행동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일 수도, 무심코 한 실수였을 수도, 혹은 상대방의 몸에 벤 무심함이었을 수도 있다. 가장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나를 특별히 싫어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예민함을, 아니 섬세함을 타고났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해보려 한다. 마음속의 부정적인 속삭임이 올라올 때, 판단하지도 해석하지도 않은 채 그 상태로 두는 것. 애매함을 애매한 채로 남겨두는 것. 그것을 내 책임으로 받아들일 이유도, 나의 가치로 환산할 필요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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