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하는 '완전한 여행' 내려놓기

by 담하

안데르스 한센의 『인스타 브레인』에서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600명을 대상으로 페이스북을 사용할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결과, 과반수가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러나 3분의 1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고,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질투였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에서 어떤 것을 봤을 때 질투를 느낄까? 새 차일까, 아니면 새로 리모델링 한 집일까? 둘 다 아니었다. 질투의 대상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이었다. 이국적인 곳에서 찍은 휴가 사진은 비싼 소파나 빠른 스포츠카보다도 질투를 더 유발했다. 그리고 경험은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가장 많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ㅡ안데르스 한센의 『인스타 브레인』 중에서(p.162)


여행을 참 좋아하는 나 역시 SNS를 통해 누군가의 여행 소식을 접하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들뜨게 한다. 관광과 휴양이 적절히 섞인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어느 순간 한 박자 쉬어가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여행지에서의 쉼은 일상의 속도를 늦춰주고, 생각할 틈을 만들어준다. 때로는 그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아, 내가 필요했던 건 휴식이었구나.’

그렇게 여행지에서 쌓은 기억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좋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에 비해, 그렇지 못한 준비 과정은 늘 부담스럽다. 이왕 떠나는 여행이라면 남들 다 해본 것은 나도 해보고 싶어진다. 다시 그곳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나중에 떠올렸을 때 후회 없는 여행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여행 준비가 여행의 시작이지.'라는 긍정적인 다짐으로 준비를 시작해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는 금세 지쳐버린다. 어디로 갈지, 언제 갈지, 숙소와 교통, 일정까지. 선택해야 할 것들은 끝이 없고, 우유부단한 성격은 결정의 반복 앞에서 쉽게 넉다운이 된다.


완전하고 행복한 여행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이왕 가는 거 제대로’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나라도 놓치면 손해일 것 같고, 작은 실수 하나가 여행 전체를 망칠 것만 같은 압박이 따라온다. 여행 전 해야 할 일들도 만만치 않다. 비워야 할 일정, 미리 끝내야 할 일들, 짐을 싸고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환전을 하는 일까지. 떠나기 위해 정리해야 할 현실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시간대별로 촘촘한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여행이 반복될수록 계획은 점점 느슨해졌다. 특히 열흘이 넘는 긴 여행에서는 모든 일정을 미리 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스위스를 포함해 동유럽을 3주간 여행했을 때가 그랬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를 여행하려니 패스권부터 숙소까지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미리 알아봐야 하는 것들이 많아 준비는 점점 버거워졌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지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최소한의 예약만 해두고, 가고 싶은 곳을 대략 정한 채 그날의 상황에 따라 일정을 바꾸며 여행했다. 뜻하지 않게 ‘완벽한 계획’을 내려놓은 셈이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여행’에 대한 욕심만큼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관심은 여행 콘텐츠를 즐겨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유명 ‘여행 유튜버’ 세 명이 주사위를 굴려 무작위로 정해진 나라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꼼꼼한 계획이 없어 마주하는 당혹스러운 순간에 어떻게 노련한 대처를 할까란 기대감으로 시청하게 됐다. 하지만 여행에 능숙할 것만 같았던 이들의 여정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물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바가지를 쓰는 장면도 자주 등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완벽한 여행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제야 여행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과 쉼, 그리고 사색이지,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해보는 데 있지 않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에게 덜 부담스러운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진짜 여행 감각일 것이다. 일정이 틀어지고 길을 잃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그것 역시 여행지이기에 가능한 특별한 에피소드일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한 여행을 바라지 않기로 한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건 완벽한 여행을 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기만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일정이 엉성해도,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 완전한 여행을 하지 못해도, 나에게 충분한 여행이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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