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의 삶은 행복할 수 없다.

by 담하

내 고향은 경상도다. 지역적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흔히 경상도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다는 말을 듣는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그렇듯 성격에도 장단점은 존재한다.


급한 성격의 장점은 특히 업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일을 배울 때 내가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효율성이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가장 빠른 루트로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 과정을 한 번 익혀두면 이후의 업무는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급한 성격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만들었고, 빠른 결과물을 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반면 단점 또한 명확했다. 급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인내와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이 지연되거나,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할 때, 혹은 인기 맛집의 대기 줄에 서 있을 때면 어김없이 짜증이 몰려왔다. 이런 성향은 업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짧고 단기적인 일은 비교적 수월하게 처리했지만,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업무는 늘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릴 적 장거리 달리기는 곧잘 했던 것 같은데, 왜 끝이 멀게 느껴지는 일 앞에서는 이렇게 약해지는 걸까. 그나마 끝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일이라면 나은 편이었다.


문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들이었다. 취업 준비처럼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과정,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들 말이다. 사실 인생은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나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불확실한 일과 마주할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때마다 늘 ‘임시’의 시간을 살았다. 지금은 나의 다음을 위해 잠시 거쳐가는 시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머물렀던 임시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급한 사람’이라기보다 ‘빨리 끝내고 싶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끝이 정해진 일에는 비교적 강했고, 끝이 불확실한 일 앞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그 결과 늘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지만 ‘급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에만 집착했던 것 같다. 가벼운 집안일이나 책을 빌리는 일, 금방 끝낼 수 있는 사소한 일들 말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급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라든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야 하는 습관 같은 것들에는 좀처럼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실속 없이 그저 ‘바쁘기만 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장기적이고 불확실한 시간들 앞에서는, 또다시 스스로를 ‘임시’라는 말 안에 가둬두었다.


미하엘 덴데의 『모모』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게 중요한 거야.”
―미하엘엔데의 <모모>중에서 (p.50~51)


나는 그간 거대한 일과 마주했을 때, 한 번에 모든 것을 해내려고만 했다. 그러니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고, 시작하기도 전에 무기력해졌다. 책에서 말하듯, 한꺼번에 해내려는 마음은 이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과 조급함만 남길뿐이다. 대상이 클수록 뇌는 더욱 쉽게 압도되고, 불안은 증폭된다.


그때 내가 내디뎌야 했던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은 한 걸음이었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을 하나 해결하며, 조급함을 누르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힘이었다. 한 걸음에 집중한다는 것은 임시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내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삶의 어떤 순간도 ‘임시’로 두지 않으려 한다.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선택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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