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가 알아서 할지어다

미래 자기 연속성 (1)

by 담하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밤, 유난히 배가 고플 때가 있다. 해야 할 과제가 눈앞에 있지만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고, 분명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워놓고도 첫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이 말은 이상하게도 우리를 잠시 편안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의 불편함과 책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이미 지쳤고, 더는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에게 슬쩍 일을 맡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내일의 내가 오늘보다 더 여유롭거나 더 성실해질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말을 이렇게 자주, 쉽게 꺼내게 되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미래 자기 연속성(future self-continuity)이란 개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미래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과 얼마나 연속적이고 밀접하게 느끼는지를 나타낸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흔히 미래의 '나'를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인식해 현재의 결정에서 미래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희원의 『저속노화 마인드셋(p.33)』중에서


어쩌면 가장 솔직한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은 괴롭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려면 불편함을 견뎌야 하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책임이 따라온다. 그 책임의 무게가 부담스러울수록 우리는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달콤하지만, 그 대가는 대부분 미래의 내가 치르게 된다. 지금의 불편함 10을 피한 대신, 미래의 부담 50을 남겨두는 셈이다.


물론 미루는 일이 언제나 잘못은 아니다. 사람은 지칠 수 있고, 때로는 쉬어야 한다. 하지만 미룸이 반복되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용한 불신이 자라난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쌓이고, 자존감은 서서히 깎여 나간다. 결국 감당해야 할 현실은 더 커진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순간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래 보상의 가치를 할인하는 경향을 '시간적 할인'이라 부르는데, 이는 종종 현재의 즐거움과 과도하게 중시하는 현재 편향(preseont bias)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는 100만 원과 한 달 뒤에 받을 110만 원 중 많은 사람이 즉각적인 100만 원을 선택하지만, 둘 다 미래라면(예: 1년 뒤 100만 원 vs 1년 1개월 뒤 110만 원) 기꺼이 한 달을 더 기다리겠다고 한다.
―정희원의 『저속노화 마인드셋(p.34)』중에서


미래 자기 연속성이 낮은 상태에서 시간적 할인까지 강하게 작동한다면, 우리는 구조적으로 손해 보는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미래의 나를 이토록 남처럼 대할까. 가장 큰 이유는 미래의 나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 모습과 감정, 생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어렵다 보니,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인지적 거리감은 점점 커진다.

지금의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할수록 불편함과 스트레스,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당장의 만족을 택하게 된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알면서도 먹으며, 책임져야 할 일들을 계속 미뤄두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선택의 끝에는 늘 비슷한 얼굴의 미래의 내가 서 있다. 조금 더 지친 얼굴로,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안은 채.

이 간극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미래의 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것이다. 막연한 ‘언젠가’가 아니라, 날짜를 정해보고 그때의 나를 상상해 본다. 예를 들어 3개월 뒤의 나는 어디에 있을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지금보다 더 피곤할지 아니면 조금은 숨 돌릴 여유가 생겼을지. 그렇게 미래의 나에게 표정을 부여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남이 아니라 이어진 나 자신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주 사소한 약속을 지켜내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미래의 나를 믿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과거의 내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기억이다. 그래서 거창한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이행이다. 그 작은 성공들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말하지 않게 된다.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대신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의 내가 조금만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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