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내 삶이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단 한 번만 선을 넘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이코패스 쌍둥이 형제에게 휘말려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평범한 삶’을 갈망했다. 그 말 한마디에는 유난해지고 싶었던 사람의 욕망이 아니라,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한 인간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그가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삶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왜 평범해지고 싶어 하는 걸까.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이란, 통계적으로 사회의 다수가 선택한 삶의 모습에 가깝다. 평균적인 직업, 가족의 형태, 일정한 수입과 인간관계, 무난한 가치관. 큰 사고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흘러가는 삶. 누가 보아도 무던하고 안정적인 그런 인생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평범하게 산다’는 말은 생각보다 애매하다. 겉으로 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그 평범함을 유지하기까지의 과정은 사람마다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장면들 속에는 사실 수없이 많은 인내와 타협, 그리고 숨겨진 고통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모든 평범함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멀리서 바라볼 뿐, 그 안쪽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다. 화목해 보이는 가정 뒤에 침묵으로 덮인 갈등이 있을 수도 있고, 여유 있어 보이는 재산이 사실은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일 수도 있다. 서로를 잘 이해하는 친구처럼 보여도, 정작 속마음은 끝내 나누지 못한 채 상대의 기쁜 소식 앞에서 온전히 웃어주지 못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좋아 보이는 직업 역시, 당사자에게는 매일의 출근길이 버티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늘 결과만 보고, 그 과정을 쉽게 평범하다고 부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범’이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가둔다.
'평범, 그까짓 게 뭐길래.'
내가 갖지 못한 평범함은 괜히 서럽고, 억울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들고, 괜히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 남들에겐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내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화가 나고, 주눅이 든다.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이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랬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지금이라면 비교적 치료가 가능한 위암이었지만, 30년 전 그 당시에는 제대로 손써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의 나이 마흔이었다. 남들에겐 다 있는 아버지가 나에게만 없다는 사실은 학창 시절 내내 내 발목을 잡았다. 숨겨야 했고, 아닌 척해야 했다. 편모 가정의 아이를 향한 불편한 시선이 노골적이던 시대였기에,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어느새 나의 치부가 되어버렸다. 남들과 다르다는 그 한 가지 이유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에게 “평범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은 꽤나 솔직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말하는 그 평범함을 온전히 갖추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에 가까운 일일 테니까.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건강을, 누군가는 마음의 평온을 잃은 채 살아가면서도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살아간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우리의 선택을 흔든다. 정말 원해서라기보다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남들 눈에 어긋나 보이지 않기 위해 선택한다. 그렇게 선택한 평범함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안전함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느낀다. 과연 그런 선택 끝에 놓인 삶은 행복할까.
분명한 건, 평범함이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선택을 해도 충분히 공허할 수 있고, 남들과 다른 길 위에서도 얼마든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애초에 ‘평범하게 산다’는 말 자체가 맞는 말인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각자의 사연과 무게가 담긴 인생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어버리는 일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과 비슷한 모양이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삶을 선택하는 것 말이다.
그러니 누구나 당연히 갖고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무엇’을 가지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자.
평범, 그까짓 말에 지지 말자.
평범하지 않은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