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가 알아서 할지어다

미래 자기 연속성 (2)

by 담하

지난주에 다루었던 미래 자기 연속성에 관해 이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내일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이다.


미래 자기 연속성이 낮을수록 우리는 먼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나와 이어진 존재로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그 결과,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현재의 부담을 미래의 나에게 넘기려는 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더 여유 있으며, 더 잘 해낼 사람일 것처럼 상상하면서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의 큰 분기점을 맞는다. 독립, 취업, 결혼.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이다. 30대 중반의 나는 결혼이라는 분기점 앞에 서 있었다. 3년을 만난 연인이 있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에는 늦어도 내년에는 결혼을 추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식장을 알아보며 현실을 마주했다. 괜찮은 예식장은 이미 1년 이내 예약이 대부분 마감된 상태였다.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예약 자체가 쉽지 않았고, ‘좋은 날’이라고 받아 온 날짜와 맞물리는 일정은 더욱 구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예식장에서 겨우 단 한 자리, 5개월 뒤 일정 하나가 비어 있었다. 5개월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을지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러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식장을 예약했다.

시간이 급박하다 보니 차근히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주변에 결혼을 먼저 경험한 사람도 많지 않아 준비 과정은 거의 맨땅에 헤딩에 가까웠다. 결정해야 할 것들은 끝이 없었고, 일정은 빠듯했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점점 커졌다. 결혼식 마지막 행진에서 “이제 다 끝났다!”라고 외치며 뛰어나오고 싶을 만큼 숨이 막혔다. 5개월간의 전쟁 같은 준비가 끝나고 신혼여행 비행기에 올라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결혼 준비를 하며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일정을 너무 급하게 잡았다는 아쉬움이었다. 부모님이 원했더라도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조금 더 늦춰 여유 있게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시간이 촉박해 서둘러 내린 결정들 중 일부는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그때의 선택은 무책임했던 걸까.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인 결정은 잘못이었을까.




선택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 결정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었다. 1년 안에 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이 있었고, 좋은 날짜의 선택지도 거의 없었다. 대안이 제한된 상황에서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 아니라, 고민할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이 둘은 분명 다르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이는 무책임이라기보다 결정 피로와 불확실성 회피, 그리고 상황적 강제가 겹친 전형적인 패턴에 가깝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에도 그 시간이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결정을 내린 이후 나는 두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에서 버티고 실행하고 선택해야 하는 지금의 나, 그리고 그 모든 결과를 책임질 미래의 나.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결정이 틀려서가 아니라, 결정 이후에 회복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질문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그 선택은 틀렸는가?’가 아니라,

‘덜 힘들었으면 더 좋은 선택이었을까?’

‘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한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일정은 급박했고 스트레스도 컸다. 그러나 미루었다면 갈등과 불확실성은 더 길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더 오래 끌고 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선택에는 변수와 예상치 못한 비용이 따른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선택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중요한 결정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럼에도 후회처럼 남는 감정은 있다. 준비 과정에서의 아쉬움,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나 자신을 너무 혹사시켰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잘못된 결정이었다기보다, 그 결정을 감당하는 방식에서 내가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졌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에 가깝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때의 결정을 다시 재판하는 일이 아니다. 그때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음이 한켠에 있었을지라도,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스트레스를 감수했다. 그것은 실패라기보다 소진에 가까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선택을 다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에서 나를 덜 소진시키는 방식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기보다는, 현재의 내가 감당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 아마 그것이 미래 자기 연속성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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