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른다. 비유적인 의미의 시험이 아니라, 실제로 답안지를 채워야 하는 시험들이다. 학창 시절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수능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전공과 교양 시험이 이어진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토익 점수와 자격증, 논술과 상식, 전공 시험이 또 다른 이름의 시험이 된다. 전문직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각자의 삶을 오래 붙잡아 두는 특별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시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일정 기간의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특히 수능처럼 오랜 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시험은 단 한 번의 결과로 인생의 방향이 결정될 것 같은 두려움을 안긴다. 그 두려움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준비의 시간을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든다.
나 역시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이 모든 시험의 과정을 거쳐왔다. 결과가 어땠든, 시험을 준비하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지금도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방향을 택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보거나, 수능 관련 기사를 접할 때면 그들이 견디고 있을 고단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능이 끝난 뒤의 관행 중 하나는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을 불태우는 것이다. 쓰임이 다한 책을 다루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간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팔거나, 버리거나. 이러한 방법들을 쓰지 않고 굳이 책들을 화형에 처하는 것이다. 수험 생활을 함께한 전우에게 하는 대우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박한 처사다. 나는 여기에서 과정에 대한 분노를 읽는다. 결과만이 중요하기에 과정은 불필요하고 의미가 없으며, 때로는 불태우고 싶을 만큼 증오스럽다. 결과가 좋았더라도 과정은 힘들다 여겨지고, 만일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과정의 힘듦이 한층 더 크다.
―정희원의 『저속노화 마인드셋』(p.198)중에서
‘과정에 대한 분노’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콕 박혔다.
수능이라는 문화가 몇 년의 시간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끝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해방감과 분노, 허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책을 불태우는 행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이제 고생은 끝났다”는 선언이자, 억눌린 감정을 한순간에 쏟아내는 의식에 가깝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과연 옳은가 하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불태우는 행위가 상징적으로는 통쾌해 보일지 몰라도, 막상 모두 태우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잠깐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그 이후의 삶이 실제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무엇이든 완전히 끝나는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고, 삶은 그렇게 계속 흘러간다. '이것만 끝나면 끝'인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불태움으로 얻는 해방감은 다소 거칠고,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일이든 과정에서 얻는 교훈이나 기쁨이 없다면, 인생은 고통의 반복이 되고 만다. ‘고생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위험하다. 수능을 준비하며 그 책들이 힘들게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시간만큼 버텨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일은 그 시간을 오직 ‘의미 없는 고통’으로만 정리해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가 좋았다고 한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그런 식이라면 모든 과거는 결국 불행으로만 남게 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경쟁은 피하기 어려운 요소다. 많은 문제가 지적되면서도 수십 년째 수능이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같은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도 학창 시절 교과서 몇 권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사와 음악 교과서다. 한국사는 수업을 듣는 내내 재미있었고, 음악 교과서에는 노래 실기 시험을 준비하며 보냈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같은 교과서라도 어떤 것은 추억이 되고, 어떤 것은 분노의 대상이 된다.
수능 책을 불태우는 일과 비슷하게, 나 역시 대학 시절 전공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곤 했다. 당시에는 그저 홀가분함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행동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따라왔다. 사실 내가 지우고자 했던 건 책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디던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버린 것은 전공서적이 아니라, 그때 그 시간 속의 나였던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지나고 있는 과정 속의 시간들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려 한다. 결과만을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밀어내기보다는, 비록 힘들었더라도 분명히 존재했고, 나를 통과해 간 시간으로 인정해 보려 한다. 언젠가 또 다른 시험 앞에 서게 되더라도, 그 시간을 증오로만 남기지는 않고 싶다. 불태워 없애기보다, 접어서 서랍 한켠에 두듯이. 그렇게 남겨진 시간들이 모여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