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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Jul 18. 2020

제로 웨이스트, 노 플라스틱 수납

나도 한때는 지퍼백의 열성팬이었지만

    나는 각종 플라스틱 지퍼백과 밀폐용기의 열성팬이었다. 그들 없이는 이 완벽한 수납도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다른 대안을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플라스틱 사랑의 시작은 각종 미니멀리즘 책과 정리수납 책을 읽은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 책들에서 추천하는 내용들은 대개 비슷한데, 다음과 같다. 파일 꽂이에 프라이팬과 냄비 수납하기, 플라스틱으로 된 정리함에 수저와 각종 조리도구 수납하기 등등. 이 정도면 플라스틱 소비를 더 촉진시키기 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미니멀리스트답게 나의 최애 가구점과 브랜드들은 심플함과 미니멀리즘의 대명사이다. 심플하고 깔끔한 그 인테리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모든 수납용품들이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다. 게다가 신발보다 싸다! 몇천 원만 주면 우리의 넘쳐나는 물건들을 숨기고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다니 솔깃하지 않은가. 때로는 천 원, 이천 원에 수납박스를 장만할 수 있다니 플라스틱은 놀랍다. 반면에 소재가 나무나 스테인리스로만 변해도 그 가격은 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종류도 그리 다양하지 않다. 결국 플라스틱들은 어디에나 있고 저렴하기 때문에 책에 그렇게나 자주 등장한 모양이다. 플라스틱보다 가장 실천하기 쉽고, 그럴싸해 보이는 수납방법이 있기나 할까. 


그럼에도 나는 플라스틱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플라스틱의 유해성과 약한 내구성이라는 단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권하는 사회에서 감히 그것을 거스르는 소비자가 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에 의존하던 내가 플라스틱 프리 수납에 도전해본다면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지퍼백  ▶︎  천주머니

3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갈 때 필수템은 지퍼백이었다. 투명하니 내용물도 잘 보이거니와, 액체류가 흘러나올 일이 없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내 짐에는 액체류가 거의 없었다. 아로마 오일과, 치약을 액체라고 한다면 그 두 개가 전부였다. 샴푸와 각종 세제 대신 고체비누를 쓰고, 로션이나 스킨 같은 제품은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 해외생활 6개월 차에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천주머니 들고 가는 거, 지퍼백 대신에 사용해보면 어때?" 


결과는 성공적. 쓰다 보면 구멍이 나고, 구겨지는 지퍼백과 달리 천주머니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세척이 필요하다 싶으면 같이 세탁해버리면 되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투명하지 않아 내용물이 훤히 보이진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어떤 천주머니는 로고가 적혀있고, 사이즈도 제 각각이었다. 나는 그걸로 뭐가 뭔지 구별한다. 어쩔 땐 천주머니를 더듬으며 무슨 물건일까를 추측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자잘한 물건들을 비워냈기에 필요하지 않은 작업이다. 물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구멍이 송송 나있는 메쉬백이라는 것도 있다. 제로 웨이스트 온오프라인 샵에 가면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유용한 제품이니 아래 사진을 참고해보고 그 매력을 느껴보시길. 


참, 요리할 때도 지퍼백 참 많이 썼다. 특히 계란 장조림과 야채 보관할 때 말이다. 지금은 여러 모양의 그릇을 활용하고, 야채 보관은 역시 천주머니를 이용한다. 미리 잘라놓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손질하는 편이다. 나의 기준인 100년 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야채를 반드시 어떤 주머니에 나눠서 깔끔하게 보관할 필요는 없다는 것 같아서, 천 장바구니에 한꺼번에 담아놓고 바닥 가까이에 보관한다. 물론 이 질문과 대답은 뇌피셜이다.






출처 : 세이플래닛 아윌비백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42415






밀폐용기  ▶︎  유리병과 스테인리스 용기


어렸을 때 집에 도착한 커다란 락앤락 세트에 엄청 기뻐한 적이 있다. 살림을 시작했던 때라 인생에서 받아본 산타 선물에 비하면 역대급 실용적인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던 거다. 모든 요리와 야채를 소분해서 투명한 용기에 정리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밀폐용기가 100% 플라스틱이었다. 학교에서 사회 선생님이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틀어줄 때 즈음, 글라스락을 시작으로 한 유리 밀폐용기가 집집마다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별다른 소재의 변화는 없는 듯하다. 아마 모두가 이제 유리를 쓰니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렇게 나는 무게가 나가도 유리 밀폐용기 4개 세트를 해외 생활에 챙겨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유리 밀폐용기도 결국 뚜껑은 플라스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던 유리 밀폐용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4개 중 하나는 뚜껑 없이, 내 휴대용 비누 받침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는 멋진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을 구입했다. 국물 샘 방지 용기를 샀더니 고무패킹이 살포시 붙어있던 건 조금 슬펐지만.


멋진 스테인리스 용기를 구하기가 마땅치 않다면, 유리병도 좋다. 나는 당신이 지난주에 쓴 파스타 소스병을 알고 있다. 아니면 잼이려나. 어찌 되었든 그런 유리병을 싹 씻어서 보관용기로 사용하는 것도 좋다. 거기엔 캔들도 만들 수 있고, 제로 웨이스트 샵 장보기 도구가 되어줄 수도 있다. 물론 그 뚜껑은 플라스틱 코팅이 되어있겠지만, 내가 스테인리스 용기의 고무패킹을 피하지 못했 듯, 플라스틱 제로의 삶이 이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밀봉 클립  ▶︎  집게 클립


플라스틱 봉지를 쓰지 않으니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니까 내가 예전에 쓰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그것은 바로 집게 클립. 회사와 학교에서 쓰는 바로 그 클립 말이다. 회사에서 흔히 쓰이는 물건이라 했다고 사무실에서 가져오지는 말자. 얼마 전에 소확횡이 횡령죄는 아니더라도 절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인 전자기기를 충전하는 일까지도. 


먹다 남은 과자봉지와 밀가루 봉지를 위해 10개들이 클립도 소확횡도 불가능하다면 유튜브에서 '과자봉지 접기'를 검색하자. 과자봉지를 돌돌 마는 게 아니라, 조금만 머리를 써서 스마트하게 접으면 꽤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옷걸이  ▶︎  S자 걸이

나는 본투비 유목민이라 해외에 갈 때는 모든 짐을 다 들고 간다. EMS(국제택배)는 거절한다. 그러다 보니 옷걸이만큼 귀찮은 녀석도 없다. 기능에 비해 부피를 엄청 차지해서 다른 사람에게 준 지 오래다. 설령 옷걸이 5개를 가져간다 한들, 게스트하우스와 백팩커스라는 흡사 기숙사와 같은 방에서 쓸 일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옷걸이를 걸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정장도 입지 말라는 것이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자켓, 코트를 비롯한 옷들은 S자 걸이에 걸어놓는다. 옷걸이 하나 없는 방에 묵게 되더라도 어딘가에는 걸 수 있는 휴대용 옷걸이인 셈이다. 그 외의 옷들은 가방 안에 차곡차곡 접어서 보관해둔다. 접어서 쌓는 것이 아니라, 세워서 잘 보관하면 하나씩 쏙 빼서 입고 나갈 수 있다. 







빨래 바구니  ▶︎  천주머니


빨래 바구니 대신 천주머니에 빨랫감을 모은다. 천주머니의 좋은 점은 세탁 시에 함께 넣으면 깨끗해진다는 거다. 습하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괜한 염려에 불과했다. 옷이 적은 만큼 일주일에 두 번 빨래를 하는 생활패턴도 노 곰팡이에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 그 주머니가 세탁소에서 볼 법한 거대한 주머니냐,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했냐고 물으신다면 생각보다 리를 타이니한 주머니다. 제로 웨이스트 샵에서 파는 천주머니 제일 큰 사이즈 정도다. 어느 정도 크기냐면, 내 얼굴 하나 하고도 반개 정도의 크기다. 이건 정확하다. 내가 방금 빨래 주머니를 가져와서 내 얼굴에 대고 재봤다. 


빨래집게는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정 필요한 경우 대나무 빨래집게나 스테인리스 빨래집게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2년 전 나의 서랍. 어김없이 지퍼백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칸막이 정리함  ▶︎  간격을 두고 정리해둔다. 

이제는 서랍을 안 써서 가방에 다 넣어두는데요.라고 말하면 섭섭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2년 전 나의 서랍 사진을 들고 왔다. 그때도 모든 물건을 죄다 서랍에 숨겨두진 않았다. 매주 최소 한두 번 쓰는 물건들만 서랍에 넣어뒀다. 그리고는 마치 문구 편집숍인 척 간격을 두고 정리했다. 위치는 제일 자주 쓰는 것을 꺼내기 쉽도록 바깥쪽에 두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물건 자리에 쓸 때마다 바뀌면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규칙이었다. 






수납박스  ▶︎  여행 가방에 넣어둔다

처음엔 방에 그 많은 물건을 둘 자리가 없었다. 나중엔 내가 물건이 많다는 사실을 나에게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에 안 보이게 두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둘 늘어났던 게 수납박스였다. 우리 집도, 그리고 대부분 자주 쓰는 그 거대한 플라스틱 수납박스 말이다. 


플라스틱 수납박스를 대체할 방법 첫 번째는 종이 박스일 것이고, 두 번째는 물건을 비워내는 것이다. 지금은 수납박스를 누가 줘도 넣을 물건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물건은 기본적으로 나의 여행 가방에 보관한다. 거의 매일 쓰는 물건들만 침대 옆 협탁이나, 작은 수납공간, 또는 가방에 넣어둔다. 양치세트, 커트러리 세트, 노트북과 각종 충전 케이블, 아로마 오일과 책들이 그렇다. 


물건에는 생명력이 있고,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고 어딘가에 묵혀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모든 물건은 내 생활 속에서 활약하도록 하는 게 철칙이다. 그것이 그들의 소명이기도 하니까.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물건이 있다면 어딘가에 보관하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무료 나눔 하여 물건을 순환시킨다. 수납 가구와 용품을 늘리면 같이 증가하는 건 물건뿐이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플라스틱 물건들. 아직 대체해야 할 물건들이 이렇게나 많다. 




서류 정리함  ▶︎  스캔해서 파일로 보관

서류 정리함과 플라스틱 파일들도 이젠 없다. 모든 청구서를 메일로 받는 것은 기본이고, 서류는 모두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로 보관한다. 물론 재직하고 있는 회사의 계약서처럼, 그중에서도 원본이 필요한 서류도 있긴 하다. 그럴 경우에는 종이 파일에 넣어 보관한다.  




휴지통  ▶︎  없음

휴지통도 쓰지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땐 시에서 파는 쓰레기봉투를 주방 한쪽에 잘 세워둔다.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해외에서는 사탕수수로 만들어진 봉투를 쓰곤 했다. 종이는 쉽게 찢어지기 때문에 불합격이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고 쓰레기 자체가 별로 발생하지 않아서 여름이어도 벌레가 룸메이트 하자고 찾아오진 않는다. 버리는 거라곤 포도 가지나, 치실 정도. 내가 셰어하우스를 졸업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지렁이 화분을 만들어 과일 껍질 같은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규격봉투든 설탕 수수 봉투 살 돈으로 포도를 한 송이 더 사 먹겠지.


분리수거 바구니는 없다. 주방이나 현관 한쪽에 모아뒀다가 매일 출근할 때 같이 들고나간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매일, 그리고 출근 시간에 분리수거를 버릴 수 없지만, 2~3일분의 캔과 종이를 모아놔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면 분리수거도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통들이 없으니 하나씩 닦아야 하는 수고가 줄어서 너무 행복하다. 











플라스틱을 100% 피해 갈 순 없었다, 고 말했지만 사실 찾아보면 대체 가능한 것이 분명 있다. 없으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대체할 방법이 존재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래서 우산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웃집 토토로처럼 나뭇잎 쓰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코르크 소재 우산도 있었고 천으로 만든 우산도 있었다. 국내에는 아직 친환경 소재의 우산이 없는 듯한데, 누군가 알고 계시면 제보 바랍니다. 


결국 제로 웨이스트는, 그리고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사는 방법은 우리의 창의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방법들은 그 싱크빅의 결과물이다. 물론 간혹 그게 귀찮아져서 물건을 줄였고, 아직도 비우는 과정에 있기도 하지만. 


수납용품에 힘을 빌리기보다 물건의 각자 자리와 자기만의 규칙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 꼭 물건을 위한 또 다른 물건을 사서 각자 칸을 부여하고 봉지에 욱여넣을 필요는 없다. 내 모든 물건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고, 쓰고 나서도 다시 제자리에 갖다둘 수 있다면, 수납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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