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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Apr 23. 2020

한국에서 제로웨이스트가 불가능하다는 건 나의 핑계였다

어때요, 참 쉽죠? 

    "귀국하면 쓰레기를 한 트럭 만들겠군." 한국으로 귀국하기 일주일 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재작년, 한국에서 제로웨이스트를 갓 시작했을 때 이곳은 불모지라 생각했었다. 사과 하나, 쿠키 하나마저도 다 각각 플라스틱으로 감싸져 있고, 말하기도 전에 비닐 포장이 이중 삼중에, 각종 일회용 커트러리까지 챙겨주는 다정한 곳이었으니까. 호주야 벌크샵도 동네마다 있고 커스터마이징에도 익숙한 곳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난 안될거야. 


놀랍게도 한국에서 지낸 지 두어 달이 된 지금, 나는 호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쓰레기를 거의 만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이곳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빵을 천주머니에 담아오고, 천주머니를 깜박했다면 손수건에라도 빵을 받아오는 그런 힙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변했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제로웨이스트도 결국 미니멀리즘처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환경과 기반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한국이라서, 제로웨이스트가 생소한 곳이라서 쓰레기 줄이기가 힘들다는 것은 나의 변명일 뿐이었다. 여전히 결제하자마자 튀어나오는 영수증은 어째야 하나 싶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현재로썬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한국에서 제로웨이스터로 살아가는 팁이기도 하지만, 장소를 불문하고 제로웨이스터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한 가이드이기도 하다. 벌크샵이 없다고, 빨대가 이미 컵에 꽂아져나왔다고 슬퍼하지 말자. 우리는 어디에서든 쓰레기봉투값을 아껴 크루아상을 하나 더 사먹을 수 있는 이기적인 제로웨이스터가 될 수 있다.






제로웨이스터의 흔한 장보기.jpg






장보기는 마트말고 야채가게와 시장에서

 

    체인점 마트에 가곤 깜짝 놀랐다. 브로콜리 하나, 파프리카 두 개부터 모든 것이 다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있었다. 여기선 장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겠다는 경보알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동네 마트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여전히 플라스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가장 합리적인 대안책으로 떠오른 시장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장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착한 곳은 '야채가게'였다. 인테리어 없이 바닥에 야채를 늘어놓은 곳, 카드 없이 CASH ONLY를 주장하는 동네의 바로 그곳이었다. (카드를 받지 않는 곳에선 소비를 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내 소비 신념을 조금 굽혔다.) 새치기가 빈번하고, 때로는 말싸움이 일어나기도 하는 동네 최고 와일드한 곳이다. 제로웨이스트가 참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순간이다. 


플라스틱 포장 제로, 모든 야채들은 하나씩 셀프로 집어가거나 재사용 가능한 바구니에 놓여있다. 이게 벌크샵이 아니면 무어란말인가. 조미료는 마트에서 유리병으로 된 것을 찾아보거나, 범상치 않아 보이는 동네의 식료품점, 때로는 불가피하게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작년부터 마켓컬리를 포함한 식료품 배송업체들이 플라스틱 프리 포장재를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하지만 아직 100%는 아니니 방심은 금물.)






배달음식과 포장은 하지 않는다


    하루는 배달음식으로 비빔밥 3인분을 시킨 적이 있다. 나물 하나하나가 플라스틱에 개별포장되어있었고, 다 먹고나니 큰 쓰레기봉투를 채울 만큼의 쓰레기가 나왔다. 큰 충격을 받은 후 원래도 잘 시켜먹지 않는 배달음식을 앞으로는 금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외식을 해왔다. 일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 생산성 덕후인지라, 밥 먹으면서 오픈 주방을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깐이었다. 상황이 악화되고 외식마저 전면 금지했다. 지금은 단순하게 집에서 모든 요리를 해 먹는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진 대신 요리왕이 되라는 신의 계시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단골 가게를 만든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눈이 "띠용"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천주머니에 야채를 담아 무게를 재고, 사은품으로 건네준 물건이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있을 때 정중하게 거절할 때 말이다. 봉투 없이 가져간다고 말씀드려도 손이 시릴 거라며, 꽃에서 나오는 물로 손이 더러워질 거라며 끝까지 비닐봉투를 챙겨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땐 가게를 나와보면 머쓱한 표정으로 플라스틱 봉투를 들고 서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좋은 의도로 해주신 건데, 이럴 땐 참 어째야 하나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같은 가게를 두세 번 가다 보면 그들도 익숙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야채가게에 가도 봉투를 챙겨주지 않고 같이 천주머니에 토마토를 열심히 넣어주신다. 가끔 가는 마트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많은 짐을 천 가방에 다 넣을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주신다. "봉투 필요하세요?"라는 멘트는 자동으로 스킵해주신다. 단골은 가게 사장님만 좋은 게 아니라 나에게도 좋은 거군. 앞으로도 단골 가게를 넓혀가려고 한다. 





먼저 물어보고 요청한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뜻하지 않게 플라스틱을 선물 받을 때가 있다. 여기서 먹고 간다고 했는데 플라스틱 접시에 나온다거나, 컵에 빨대가 꽂아져 나오는 경우들이 그렇다. 나는 이것을 플라스틱 어택이라고 부른다. 심장에 좋지 않을 만큼의 갑작스러운 충격과 공포와 실망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접시에 나오나요? 빨대도 같이 나오나요? 이제는 걱정된다면 먼저 물어본다. Yes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그러길 원치 않는 경우에는 정중하게 요청한다. 가지고 있는 천주머니, 텀블러, 유리병이나 보존 용기를 대안으로 제시해보기도 한다. 




대체품이 없다면 소비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팩으로 된 두유를 더 이상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두유팩의 플라스틱 캡과 테트라팩, 병두유의 플라스틱 비닐은 적은 양이라 해도 여전히 플라스틱인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지 않다고 해서 항상 플라스틱 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넛밀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지만, 그런 수고까지 들여야 할 생필품은 아니라 판단했기에, 이제는 두유 대신 차를 마신다. 대신 티백으로 되어있지 않은 것을 스테인레스 티 스트레이너를 사용해 우려마신다.


이쯤 되면 탄식과 함께, 그래서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내 생활방식이고 취향에 불과하다. 환경을 생각하기 이전에, 더 심플하게 살고 싶고, 플라스틱은 건강을 위해 멀리하며, 쓰레기봉투값 아껴서 아보카도라도 하나 더 사 먹으려고 그런다.


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유튜브, 넷플릭스처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골라보고 광고는 스킵한다. 더 이상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재미없는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시대는 지난 것이라는 말. 그렇게 플라스틱에 있어서도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플라스틱에 싸여있는 것을 어쩔 수 없다며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플라스틱 포장이 없는 것을 고르는 세상 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의 대표적 사례




하루는 "다들 이렇게 실천을 해야 하는데, 참 존경해요"라는 말을 마트 직원분께 들은 적이 있다. 천주머니에 야채를 담아가려 하니 대뜸 놀라셨던 분이 무게를 재주시면서 해주신 말이었다. 


'왜 나만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왜 다른 사람은 안 하는데 내가 제로웨이스트를 해야 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하니까, 내가 있는 곳과 이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해나간다. 제로웨이스트 3년차, 이제는 어디서든 제로웨이스트를 안하는 일상이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국내 제로웨이스트 리소스


더 피커 : 성수동 소재 벌크샵. 각종 제로웨이스트 용품을 온라인으로도 판매중인 곳입니다.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 동작구 상도동 소재 벌크샵. 

보틀팩토리 : 연희동 소재 카페. 기부받은 텀블러를 활용하여 컵공유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제로웨이스트 제품들도 같이 판매중입니다. 

채우장 : 보틀팩토리에서 주최하는 쓰레기없는 마켓입니다. 

마르쉐 : 매주 서울 각지에서 열리는 장. 출점자가 직접 생산한 농산물, 요리, 수공예품 등이 판매됩니다. 


중고샵 : 마켓인유, 아름다운 가게

업사이클링 브랜드 :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등 ('업사이클링'을 키워드로 구글링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trash is for tossers : 해외 제로웨이스터이지만 DIY 등 도움이되는 콘텐츠가 많아 공유합니다. 유튜브채널

매거진 쓸 : 제로웨이스트 잡지. Ebook 구매도 가능합니다.

쓰레기덕질 : 국내 제로웨이스트 커뮤니티

무파마와 매립지 : 제로웨이스트 도전기를 브런치에 연재합니다.


<나는 쓰레기없이 살기로 했다> : 제로웨이스트 입문자들의 교과서와도 같은 존재

<우리는 플라스틱없이 살기로 했다> :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하는 다양한 팁을 소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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