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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ie Mar 19. 2020

이기적으로 살기 위해 '제로 웨이스트'를 합니다.

제가 환경에 지대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것은 환경운동가들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편의점만 가도 거의 모든 음료수가 플라스틱에 담겨있는데, 플라스틱 없이 산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지. 굳이 지구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 사는 이유는 뭘까. 다들 정말 피곤하게 사는구먼.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지금 제로 웨이스터가 되었다. Zero Waste + er, 말 그대로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며 사는 사람이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콘텐츠를 찾아보다 타고 타고 건너가 만난 것이 지금의 '제로 웨이스트'이다. 미니멀리즘도 웬만큼 했겠다, 이제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 시작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쓰레기 없는 장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잡지도 나온다. 하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제로 웨이스트란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다. 심지어 그 흔한 블로그, 유튜브 콘텐츠조차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외 유튜버, 아티클로 접한 제로 웨이스트는 한국의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모든 것이, 심지어 사과 하나마저도 플라스틱에 감싸 져 있고, 마트에서 플라스틱 없는 쇼핑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내 나름대로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나갔다. 일회용 주방용품들, 랩, 키친타월, 포일 등을 주방에서 없앴다. 집안에 쓸만한 일회용 제품들을 전부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한여름의 산타를 자청했다. 한국에 유리병으로 포장된 식재료를 찾기 힘들면 해외 직구라도 했다. (지금은 탄소발자국을 고려해 해외 배송은 시키지 않는다.)


하나의 챌린지로써, 생활에 자극을 주고자 시작한 제로 웨이스트에 금세 빠져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제로 웨이스트 덕에 물건이 더 줄었고, 시간과 돈도 절약되고 있었다. 나를 위해 시작한 이 라이프스타일, 어쩌면 지구보다 나에게 주는 이득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랩과 봉투에게 안녕을 고하고, 대신 비즈왁스랩과 그릇을 사용한다.






내 시간과 돈은 소중하니까


분리수거를 한다. 얘는 플라스틱인가 비닐인가 긴가민가하다. 물건 뒷면을 확인해도 딱히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일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은 재활용을 버리러 나간다. 일회용품이 떨어질 때마다 사둬야 한다. 이번 주는 키친타월이 떨어졌네. 아이고, 이번엔 물티슈가. 또, 매주 방마다 있는 쓰레기통들은 안녕한가 체크한다. 그냥 봉투만 교체하는 건 좀 성의가 없으니까, 오늘은 통을 닦아보자. 다들 모여봐. 우리 집에 쓰레기통이 다섯 개가 넘었었나?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고 분리수거를 할 일이 없다. 간혹 가다 캔이나 병이 나오는 정도고, 기본적으로 플라스틱과 비닐은 쓰지 않는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아주 작은 쓰레기봉투가 꽉 찰까 말까 한다. 대부분의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이나 사과 속이다. 야채 뿌리도 되도록이면 요리에 같이 넣어 먹는다. 유일하게 사용하는 일회용품은 화장지다. 그 이외의 것들은 대체품 하나를 사두고 1년째 잘 쓰고 있다. 쓰레기통이 많을수록 쓰레기는 더 많아진다고 믿어서, 집에 있는 쓰레기통은 딱 하나다. 


쓰레기가 그동안 내 시간과 돈을 뺏고 있었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는다. 이렇게나 내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었다니, 이런 쓰레기. 


제로 웨이스터의 세상에서 유한한 물건이란 없다. 뭐든지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비닐 랩을 쓰는 대신에 비즈왁스 랩을, 플라스틱 볼펜 대신에 만년필을 쓴다. 필요 없는 물건은 제삼자에게 팔거나 기부하고, 필요한 물건은 중고로 산다. 덕분에 평소에 즐겨 입던 브랜드의 청바지는 10달러에, 운동복은 상하의 세트로 10달러에 장만했다. 중고제품을 찾는 것은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텀블러 할인을 받고, 봉투값을 줄이며 살아간다. 


이런 반가운 절약에 필요한 플라스틱 대체품은 '쿨'하다. 귀찮거나, 번거롭고, 때로는 애처로우며, 구질구질하지도 않다. 나의 조용한 나무 수저는 적당히 닳아있고, 어느 접시에나 잘 어울린다. 하얀 면 행주는 터메릭(강황) 가루 자국과 각종 오염을 겪고도 여전히 1년 넘게 하얗게 유지되고 있다. 천주머니와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하는 제로 웨이스터야말로 2020년 최고의 힙스터일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연장선


스케쥴러는 반드시 펜으로 직접 써야 했고,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했다. 무슨 신념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것만큼은 아날로그여야 했다.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고서, '종이가 없는 삶'에 대해 궁금해졌다.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기 시작했다. 스케쥴러는 아이폰의 기본 메모 앱을 쓰고 있다. 기본 앱에 이렇게나 많은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 그걸 알고 나니 여느 생산성 앱 하나 부럽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북리더기는 종이책보다 가볍고 휴대성이 좋아, 독서량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최근 쓰고 있는 모델은 스타일러스 펜을 사용해서, 직접 쓰면서 메모를 할 수 있다. 문서를 따로 프린트하지 않고도 읽으며 바로 메모하거나 표시를 한다. 


그 이후엔 헤어제품을, 보습제품을 없앴다. 이제는 헤어드라이어, 왁스, 스프레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가끔 필요할 때 코코넛 오일을 포마드처럼 사용한다. 피부에 일어난 일을 수습하기 위해 무언가를 바르기보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기를 선언했다. 그렇게 4계절을 보냈고, 나는 지금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있다. 


이것만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생각을 전환했다. 제로 웨이스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나는 일회용품들을 쌓아두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내 수화물만으로 이사하는 일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지난 1년간 나는 더 적은 물건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삶으로 증명했다. 보다 견고한 미니멀리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면 제로 웨이스트가 좋은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플라스틱 제로 크리스마스를 위한 트리. 나는 천재인가 싶었다.





내가 이 구역의 싱크빅이다



제로 웨이스트 덕분에 치약, 가글, 세탁세제, 주방세제 등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쓸 줄 아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 화학제품을 대신해서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무한한지. 베이킹소다교가 있다면 나는 벌써 한자리 차지했을 것이다. 


요리할 때도 창의력이 빠질 수 없다. 오늘 마트에서 당근을 플라스틱으로 감싸 놓았다면 그 즉시 다른 야채로 대체한다. 나는 레시피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이었지만, 샐러드에 당근 하나 빠졌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아니 어쩔 땐 더 맛있어서, 새로운 맛의 발견을 할 때도 있었다.  


저 마트에서, 이 카페에서는 어떻게 하면 쓰레기 하나 없는 쇼핑이 가능한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 오늘도 손이 근질근질하다. 제로 웨이스트에서 새로운 대안들을 배우고, 고안하는 이 과정이 참 즐겁다. 내가 이렇게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일 줄이야. 






이제는 포장할 때도 일회용품이 나오지않게 주의한다. 천주머니를 까먹었다면 손수건이라도 꺼낸다.


지난주 치과에서 처음 방문한 기념으로 칫솔세트를 받을 일이 있었다.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플라스틱은 쓰지 않아서요.' 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사실은 다음 출국 때에 가져갈 물건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저는 영원히 기내 수화물로도 충만한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여전히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다. 


나는 이렇게 내가 행복하면 곧 지구도 행복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사실은 말이 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없으니까. 내가 먼저 행복해야 타인, 동물, 더 나아가 지구까지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제로 웨이스트 1년, 나에게만 머물렀던 그 이기심과 생각이 전지구로 확대되어간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은 자신에게 득이 되고 즐거운 방법들로 천천히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해보기를 권한다. 환경과 지구에 대한 생각은 그다음이어도 충분하다. 억지로 하지 마라. 나는 당신의 제로 웨이스트가 늘 즐겁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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