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전진 일보 후퇴

by 안녕수니


어느덧 내년이면 일곱 살이 되는 우리 집 큰 어린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기기도 하고, 머지않아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서둘러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하루를 살아가는 기본적인 리듬만큼은 자연스럽게 익혀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일과를 곰곰이 짚어보았다.


아침은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겨우겨우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 놓으면 눈곱만 떼고 나와서 차려놓은 아침 간식 먹는다. '옷 갈아입어라, 양치해라' 수십 번 같은 말을 반복해야 마지못해 몸을 움직인다.


하원 후의 풍경은 더하다. 집에 오자마자 신발장에 가방과 외투를 벗어 던지고는 저녁 먹기 직전까지 간식 타령이 이어진다. 정리하고 놀아라는 말은 공기처럼 흩어지고, 아이의 귀에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자기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리정돈하자고 하면 아이는 침대로 쏙 숨어버린다. 남편과 눈을 마주치면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만 지을 뿐.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화를 내가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씨름하고 나면 하루치 기운이 몽땅 빠져나간다.


이렇게 6년을 생활했으면 이제는 좀 달라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매일 같은 잔소리를 반복하는 삶에 나부터 지쳐버렸다.


그래서 하루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기상 후, 하원 후, 자기 전. 이 시간마다 꼭 해야 할 일을 추려 종이에 적어보았다.


<기상 후>

물 한 컵 마시기

소변보고 세수, 양치하기

로션, 립밤 바르기

아침 먹고 옷 갈아입기

가방 챙기기


<하원 후>

손 씻기, 발 씻기

옷 갈아입고 정리하기

가방 정리하고 제자리에 걸기

학습지 문제 풀기

자유 놀이 & 책 읽기


<자기 전>

장난감 정리정돈

소변보기

물 한 컵 마시기

뽀뽀하고 안아주고 잠자리 인사하기


그리고 이 종이를 아이가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게 눈에 띄는 곳에 붙여놓았다.

첫날 아이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즉각적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FM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이였기에 종이에 적혀있는 순서대로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엄마, 나 이거 했어! 이다음은 뭐지?'하며 오랜만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조심스레 기대했다.


하지만 미션지의 효과는 사흘을 가지 못했다. 정확히 3일째에 하원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미션지를 보더니 하는 말. '엄마 너무 힘들어서 가방 정리는 못 하겠어.' 그러고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다. 가방 정리만 하고 쉬라고 해도 이미 귀를 닫아버린 아이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이것만 하고 간식 먹자고, 다 하고 나면 용돈 100원씩 주겠다고 아무리 달콤한 당근을 던져봐도 넘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또다시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씨름하는 생활로 되돌아갔다.


아이의 꾸준히 하는 힘이 부족한 건지, 부모인 우리의 의지가 약한 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키워낸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동으로 화장실에 가게 만드는 일조차 이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니.


이 보 전진 일 보 후퇴라는 말이 육아를 할 때 이렇게 와닿는 말일 줄은 몰랐다. 오늘은 한 발짝 나아간 것 같다가도,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제자리다. 그래도 또 가르치고, 또 말하고, 또 타이를 것이다. 아이가 아니라, 어쩌면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쪽은 나일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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