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의 행방
타고난 천성이 게으르지만, 호기심이 많고, 쉽게 질려 해서 이것저것 손대는 게 많다. 애매한 손재주 덕에 시작하면 곧,잘해내는데 '와, 이게 내 길이군' 하고 달려드는 순간 질려버린다. 그러다 보니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줄줄이 실망하게 하기도 해서 시작이 좀 조용하다. 혼자 깨작거리다가 다 치워버리고 말지. 기대는 싹을 잘라버려야지. (싹-둑)
그런데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것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 5년째 지속하고 있는걸 보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나 싶지만 요즘 이놈의 행방이 묘연하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살림에 치여 죽겠구나 싶을 즈음 만났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여전히 살림에 치여 살고 있다.
SNS에서 보이는 미니멀리스트들처럼 각 잡힌 정리와 개수가 정해진 물건 등 그렇게 살진 못하지만 나름의 선을 지키며 사는 중이다. 물건이 고장 나면 득달같이 같은 걸 샀으나 없어도 잘 산다는 걸 알고부턴 밥그릇이 다 깨져도 쉽게 구매하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검색 능력이 꽤 떨어지고... 필요한 물건도 검색이 싫으니 남들이 쓰는 거 대충 보고 괜찮다 싶으면 구매한다. 온라인으로 사서 내일이면 받을 물건도 직접 보고 사야지 라고 차일피일 미뤄 적당한 불편함을 안고 사는 이상한 고집도 있다. 그렇다고 갖고 싶은 게 없느냐? 그건 또 아니고, 유행하는 건 모조리 해봐야 하는데 그것 역시 게으른 덕에 유행 다 지나고 나서야 슬슬 숟가락을 얹으니 애매하기 짝이 없다.
언제부터 물건 하나 들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고민해보자면 '간생간사'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 주제에 취향이 촌스러운 게 큰 걸림돌인 거라! 이 촌스러움이 내 간지를 못 살리니 취향껏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유는 촌스러운 걸 좋아해라며 노래를 불러도 그걸 유행시켜버릴 인기라도 있지 나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유행하는 게 나타나면 그게 내 마음에 드는지, 우리 집에 쓸모가 있는지 스캔 끝내고 결제 버튼을 누르더라.
아.. 이 얼마나 알량한 자존심인가.
그렇다면 당연히 집에 물건이 적어 정리할 것이 없어야 하건만 내 게으름과는 무관하게 꽤나 관리가 필요한 귀한 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종일 바쁘다. 무쇠 냄비들은 물기 제거 좀 안 했다고 녹물이 질질 흐르고 제습기에 물 빼는 거 깜빡하면 뻘건 곰팡이들이 기승이다. 물걸레청소기는 사용 후 걸레도 싹 빨아 널어야 하는데 걸레에 걸려있는 머리카락은 어찌나 많고 인테리어에 도움이 될까 들인 관엽식물들은 양동이 하나로는 어림도 없어 여러 차례 물을 퍼 나르다 보면 화딱지가 나지만 내 속도 모르고 잘도 자란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날 보며 쯧쯧 혀를 찬다.
남의 취향을 훔친 벌을 이렇게 치르는군.
쓰다 보니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취향이 촌스러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조차 나를 모르면서 간지를 찾고 있다는 게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