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재인가? 대체재인가?
고백하자면 나는 돈의 신도가 된 후에도 투자를 망설였다. 이러면 안된다고 백번천번 다짐했지만, 믿음이 부족한지 매수 버튼 누르기가 겁이 났다. 그래서 교리 공부를 시작한 거였다. 공부할 수록 신심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나는 이제 투자 없이는 벼락거지 못면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주식과 채권 교당에도 다니게 된 것이다. 신도들 대화속에서 힌트를 얻어 주식의 역사를 삼성전자로 공부해보니 교리가 너무 심오하여 끝내 삼성전자 주식의 매수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단시간에 3배가 올라버린 가격에 어질어질해져서이다. 아직 나의 신앙으로는 가격평가까지는 무리였던 거 같다.
대한민국 대표 주식도 이렇게 변동성이 심한데, 투자의 방향을 채권으로 돌려야하나? 아무래도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내 성향엔 이자가 똬악 정해져 있는 채권이 더 투자성향에 맞을 수가 있다. 그리고 금융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주식도 변동성이 너무 커서 그렇지 채권화된 회사 쪼가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할수록 신심은 깊어진다. 그렇지만 투자를 하려면 일단 돈이 중요하다. 돈 쓰는 것에 쫄보 기질이 다분한 나는 잃을 일이 아예 없는 채권이 맞을 수도 있다. 채권을 알아보자.
채권은 차용증이랑 본질적으로 같다. 빚문서라는 것이다. 그러니 둘 다 거래가 가능하다. 사업을 시작해 돈이 부족해 절절매는 나한테 돈 있는 친구가 사업자금으로 천만원을 연 이율 10%로 빌려주겠노라해서 이 관계를 차용증으로 문서화했다고 가정하자. 1년 뒤면 내 친구는 1천 1백만원을 나한테 받을 수 있다. 난 떼 먹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6개월 후 친구가 급전이 필요해져서 나한테 돈을 미리 갚으라고 하면 나는 미안하지만 만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차용증을 내밀 수 밖에 없다.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업을 하다보면 여윳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게 되지 않는다. 돈이 부족하니 빌린 거 아니겠는가? 내 친구는 내 사정을 이해하고, 만기 1천 1백만원 차용증을 6개월 남은 지금 1천 40만원에 팔겠다고 주변에 말해둔다. 급전이 필요하니 할인해서 팔겠다는 거다. 차용증은 거래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일단 천만원 이상 현금을 가진 사람들만 채권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몇몇이 관심을 보이는데,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내 친구는 내가 절대 떼 먹을 얘가 아니라고, 누누이 말해도 얼굴도 모르는 날 믿고 차용증을 구매할 사람이 있을까? 만에 하나 천재지변급 위기로 내가 돈을 못갚게 되면 재산도 별로 없는 나라는 담보로 작성된 차용증은 휴지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런데 이 차용증을 채권으로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채권은 일단 천만원 빌렸어도 이걸 만원짜리 천개로 쪼갠다. 이런 걸 유동화라고 하는데, 금융자본주의 핵심교리이다. 유동화하면 유동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면 알바하는 대학생도 채권을 살 수 있다. 아무리 만원이라도 돈인데 함부로 투자할 수 없다는 신도의 마음이 생긴다면, 채권 등급을 보면 된다. 신용평가사라는 회사들이 채권에 절대 안전, 보통 안전, 약간 안전 이런식으로 등급을 붙여주는데, 안전 등급 안에서는 금리만 조금 씩 차이날 뿐 떼일 염려는 거의 없다. 그리고 신용평가사가 채권 발행하는 회사의 등급을 매기는 과정에서 이상한 애들은 등외가 되어 걸러진다. 자본시장에서 채권은 아무나 발행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돈을 안 갚으면 나라에서 만들어둔 법에서 갚아야 한다고 못박아놨고, 회사가 깡통이 아니라면, 주주보다 내 채권이 먼저다. 물론 회사가 깡통이면 내 채권도 깡통이 된다.
차용증과 채권이 태생은 같으나, 양육 환경이 다른 것이다. 채권은 차용증에 금융 기술이 들어가서 투자라는 마크를 달아주고, 공식적인 거래소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래! 채권이구나 나랑은 채권이 어울려, 주식은 이미 너무 올라서 무서워. 이런 마음으로 채권 교리를 더 살펴보기 했다.
채권 교리는 어쩌면 간단했다. 딱 3가지를 기본으로 한다.
액면가 (Par Value): 만기에 내가 돌려받을 원금
표면이율 (Coupon Rate): 발행한 회사가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간 이자율
만기일 (Maturity): 원금을 상환받는 날.
예를 들어 액면가 1만원짜리 채권을 표면이율 5%에 만기일은 1년 후라고 하면 나는 만기일에 1만 5백원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자소득세를 꼭 떼겠지. 그건 뭐 은행이자에도 붙는 거니까
그래 심플이즈베스트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율이면 이율이지 표면이율이 뭔가? 그럼 이면이율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 채권교리에는 숨어있는 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시장 수익률(또는 만기 수익률)'이다.
표면이율이 채권에 똬악 하고 정해진 이율인데, 채권은 내가 이걸 돈이 필요하거나 혹은 시장의 금리 상황에 따라 팔거나 다시 사거나 할 수가 있다.
내가 산 1만 원짜리 채권의 표면이율이 5%라고 치자. 1년 뒤 500원을 준다. 6개월 뒤, 갑자기 내가 사업상 돈이 좀 필요해진 상황이다. 그럼 이 채권을 시장에서 팔 수가 있다. 내가 시장에 내 채권을 1만 3백원에 내놓았는데, 갑자기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10%로 올려버렸다. 은행에만 넣어도 6개월 뒤엔 500원을 주는데, 누가 내 채권을 사겠는가? 내 채권은 액면가 이하로 할인하지 않으면 팔 수가 없다. 1만 원짜리 채권을 9,500원에 내놓는 것이다.
내 채권을 9,500원에 산 사람은 만기에 얼마를 받을까? 회사는 액면가에 갚아야한다. 표면이율은 변함이 없다. 6개월 후에 9,500원을 투자한 사람은 10,500원을 받는다. 6개월 만에 10%가 넘는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연이율로 따지자면 20%가 넘는다. 이걸 나도 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반대로 금리가 떨어져서 은행 이자가 1%가 되었다면 연이율 5%를 보장받은 내 채권은 너무도 소중해진다. 나는 6개월 뒤 사업자금이 필요할 때, 1만 원짜리 채권을 10,300원에 팔 수도 있다. 그럼 나중에 산 사람은 금리보다는 낫겠지만, 액면가에 정해진 5%는 달성하지 못한다.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무서워서 채권으로 도망쳐 왔는데, 알고 보니 채권도 가격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있을 수만 있다면, 회사가 부도나지 않는 한 처음에 약속한 액면가와 표면이자를 그대로 받는다. 그렇지만 중간에 금리가 올라버린다면 나는 다른 투자에 비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채권 투자는 금리에 대한 예측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투자였다. 그리고 나처럼 채권사서 끝까지 가지고 있다가 은행금리보다 조금 더 벌어볼까 하는 사람은 채권 투자자라기보다 채권 소비자로 불러야 한다. 투자자는 금리 상황에 따라 채권을 사거나 팔거나 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면 다시 금리를 공부해야하나??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나는 언제 투자를 하게될까? 오늘은 명절 전 마지막 거래일인데, 코스피는 온통 빨간색이다. 보통 명절 전이면 코스피가 빠져야하는데, 끄떡없이 우상향이다. 나는 이러다 벼락거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너무나도 된다. 돈의 신도가 되면 부자되는 길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교리를 공부해왔는데, 교리를 파면 팔 수록 투자는 더 어려워진다. 도대체 다른 신도들은 어떻게 투자를 하는 것인지 상담을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