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고생19.거대 기계의 부품이 되긴 싫어!

우리는 느리게 걷자걷자걷자!

by simple life

한 일년전 쯤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90)라는 사람과 그가 쓴 <기계의 신화>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훌륭한 사람들은 많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거 같다. 멈포드는 미국사람인데, 역사학, 사회학, 기술 철학에 다 정통했고, 이 세 가지 시선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인간을 바라본 제너럴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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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제너럴리스트를 보기 힘들다. 아마 멸종 위기 또는 이미 멸종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 같다. 학교 다닐 때부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해야 한다고 외웠고, 대학의 전공이라는 것도 한 분야를 집중 파고드는 것이다. 사회에 나와보니 돈 벌고 대접받는 직업은 회계사, 의사, 계리사, 건축사,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 자격증이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대우가 좋으니 초등학생 때부터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밤새워 공부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험에서 숫자로 평가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는 제너럴리스트의 역량 이런걸 통섭이라고도 하던데 여튼 숫자로 점수를 매겨주기가 난감하다. 이런 이유로 제너럴리스트는 조용하게 사라져 간 것이다.


그런데 AI가 짜잔!! 등장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변호사 없이 소송에서 승소하고, 증상을 상세하게 설명하면 유력한 병명도 알려주는데, 상당히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우리가 그토록 되려고 소망했던, 그리고 소망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던, 돈 잘 버는 스페셜리스트들이 스페셜하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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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길어졌지만, 멈포드는 그의 저서 <기계의 신화>에서 머리를 한 방 때려주듯이 기계에 대한 정의를 한다. 멈포드가 정의하는 기계는 산업혁명으로 발명된 기계가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어마어마하게 큰 기계가 있었으니 바로 사람이다.


멈포드는 인류 최초의 기계를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시스템이라고 말해준다. 강력한 중앙 권력(파라오) 아래, 수만 명의 노동자가 각자의 개성이나 자율성을 철저히 지운 채 오직 돌을 나르고 쌓는 '부품'으로 움직여서 도구가 열악했던 시절에 피라미드 건설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멈포드가 정의하는 거대 기계의 본질은 '효율성을 위한 인간의 규격화'다. 피라미드 건설 시스템이라는 거대기계는 파라오에 대한 믿음에 금이가고, 기계의 부품이던 인간의 탈출 등의 이유로 사라졌다.


그 후 거대기계는 다시 부활했는데, 바로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기계에는 신화가 있어야 움직인다. 예전에는 파라오라는 신화였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은 '효율성' '편리함' 'GDP'라는 신화로 우리를 부품화한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생산성이 높아져서 돈을 더 벌고, 번 돈으로 편리하게 생활하며, 이러한 일상을 계속 하려면 끊임없이 GDP는 상승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걸 생각하지 않고도 잘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이 스마트폰 안에서 서식한다. 우리는 소비하며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자발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부품으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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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선망하며 되기를 갈망했던 고소득 '스페셜리스트'들은 사실 이 현대판 거대 기계 안에서 가장 정밀하게 가공된 고급 톱니바퀴였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법전, 매뉴얼, 재무제표 안에서 오차 없이 최고 속도를 내도록 세팅된 규격품들이었다. 그런데 AI라는, 인간보다 훨씬 저렴하고 지치지 않으며 압도적으로 효율적인 대체 부품이 등장했다. 기계는 효율성이 중요하니까 효율이 부족한 부품은 더 효율을 높여 주는 부품이 있다면 대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갑자기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분업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분업이 없었다면 결단코 효율성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분업을 하면서 기계가 되었다. 분업이 처음 산업 안으로 들어왔을 때 노동자의 창의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부터 시작해서 많은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가 핀 공장의 사례를 들며 분업의 위대함을 찬양했을 때, 인간은 생산성의 비약적인 도약을 얻었지만 동시에 일의 '총체성'을 잃어버렸다. 구두 한 켤레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 수 있었던 장인은 사라지고, 평생 가죽만 자르거나 밑창만 붙이는 노동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공정만 무한 반복하는 완전한 톱니바퀴가 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스페셜리스트다. 물론 효율성이 좋아지고, 모두가 더 부자가 될 수 있으니 그걸로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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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게임체인저가 등장했다. 분업의 최상단에 있는 고소득 스페셜리스트들을 AI가 대체하고 있다. 시작과 끝이 명확한 분업에서 인간이 AI와 상대가 될까? 피라미드 건설 시스템이 붕괴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거대기계는 신화가 붕괴될 때 같이 붕괴된다. 자본주의 신화는 효율성, 편리함, GDP 같은 거다. 인간은 AI의 효율성 이상으로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기본소득 같은 담론이 주목받고 진지하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거대기계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발명한 AI로 인해서 내재적 모순이 생겨 시스템 자체에 금이 가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무식해서 그런 것까지 간파할 수는 없지만, 멈포드라면 어떨까? 멈포드는 "거대 기계에 금이 가는 시점은 시스템의 신화가 의심받고, 부품이었던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해 기계를 탈출하기 시작할 때"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다움을 이렇게 정의했다.


"타인과 교감하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무형의 가치인 상징을 창조해 내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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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돈이 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음악을 감상할 때도 이걸로 돈을 번 가수나 작곡가 혹은 기획자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벚꽃연금이니 하는 단어를 일상어로 사용해 왔고, 이런 건 전분야에 걸쳐 퍼져있다.


멈포드는 거대 기계의 대안으로 '인간의 척도(Human Scale)'에 맞는 유기적인 공동체의 회복을 말해줬다. 그 공동체 안에서 사색하고, 대화하고, 책을 읽고, 즐기면 된다. 인간적인 마찰과 느슨한 연대, 그리고 고유한 철학을 말하는 이 비효율적인 일들을 해내면 되는 것이다.

참 사서고생적이지 않나?


P.S. AI 시대에 유기체적 공동체를 회복하고 효율성이라는 톱니바퀴에서 탈출해서 공유서점 <사서고생>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혹시 이 글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우리가 준비한 공간도 흥미로우실 겁니다. 텀블벅에서 파운딩 멤버를 모집 중이니 한번 구경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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