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통하는 건 진심이다.
이 그래프는 텀블벅 대시보드에서 캡처를 한 것이다. 나는 펀딩 기간이 단21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달을 한다는데, 나는 한 달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성북천에 벚꽃이 피기 전 오픈해야한다! 원래는 3월1일 오픈하고 싶었지만, 현장 상황은 좀처럼 진척이 없었고 아티스트 최승원 소장을 닦달할 수가 없었다. 현장은 현장팀에 맡겨 두었지만 공사가 진척이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월세만 나가고 오픈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현장엘 나가보았다. 현장팀들은 늦게까지 담배만 피우며 고민하고 있었다. 한 마디 하려고 갔지만 치킨만 사주고 돌아왔다.
펀딩을 시작하고 9일이 지나도 500만원이란 목표액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500만원이라는 목표액이 이렇게 큰 금액이었구나, 그래서 목표액을 낮게 잡으라고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나는 못 알아듣고 심지어 낮춰잡았다고 생색내며 목표액을 타이핑했으니, 진짜 우리끼리 우스게소리로 우리는 이 정도면 그냥 종교라고 한다. 돈도 안되는 일을 계속 해대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일까지 하고, 한 일에 탓을 하지 않는 우리 스스로를 칭하는 자조와 자랑이 섞인 단어다. 이러니 펀딩이 P인지F인지도 모르는 내가 펀딩을 맡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이 넘도록 펀딩이 지지부진하자 초조했다. 이거 펀딩을 내가 맡았으니 내 카드로라도 100%는 만들어야하나하는 책임감이 몰려왔다. 입으로 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그러다 10일째 되는날 아침에 보니 100%는 넘어 있었다. 이때도 한숨이 나왔는데,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래 이젠 어찌되겠지? 그동안 연구하고 있던 큐레이션 키트를 디자인적 감각을 좀 넣으려고 하고 있던 중 갑자기 펀딩 금액이 며칠만에 1천만원대로 되더니, 또 며칠만에 2천만원 마감 3일 정도엔 두배인 4천으로 펀딩을 마감하게되었다.
내 인생에 이처럼 뇌에서 도파민이 나온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놀람의 연속이었다. 계속 입만 벌리다가 펀딩이 마감되었다. 주위에서는 기적이라고 했다. 펀딩페이지는 이미지로 예쁘게 해야하며 나같이 글로 써 내려가면 안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오프라인 공간펀딩은 어렵다고 특히 철거된 현장 사진과 완성될 가상 이미지만 가지고 펀딩하는 건 5백도 어렵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런 펀딩 결과가 나온다는 건 거의 기적이라고 운이 좋다고 평가해줬다. 운이 좋은 건 맞다. 원래 하늘은 나만 돕는다. 그러나 나는 이 결과는 기적이 아니라 승리라고 정의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어디에 있는 지 모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는 너희편이다>라고 강력하게 적지않은 돈으로 이기게 해준 것이다.
펀딩 후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책장이 조립되기 시작할 때, 나는 공지를 올렸다. 책장 조립 현장 구경오시라고. 놀랍게도 6분 이상 현장에 다녀가셨다. 공동으로 이 현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셨던 거다. 그러자 현타가 왔다. 나는 이 펀딩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며칠간 날마다 나를 즐겁게 하던 펀딩의 도파민이 싹 사라지고 도대체 이 공간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해야하는지에 내 온 두뇌가 저절로 움직였다.
우리 펀딩 설계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4개월이다. 사서고생은 24개월동안 절대로 망하면 안된다. 나는 최소 24개월 이상 마음속으로는 영원히 이 공간을 우리들의 취향과 지식공동체가 되도록 할 경영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다행한 것은 혼자 찾지는 않아도 된다. 이미 우리 셋이란 종교가 있지않은가?
펀딩에서 약속했다.
결제망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입점 사마인들에게 아무런 수수료도 받지 않겠노라고. 설상가상으로 최소장이 설계한 철근 책장 제작비는 하늘로 수직상승하고 있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려다 보니 일이 진도가 안나가서 용접-회의-용접-회의의 무한 반복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게다가 책장에 책을 올려둘 받침대는 스테인리스로 하자고 했는데, 스테인리스가 그렇게 비싼 물건이라는 걸 알고 집에 있는 스테인리스 냄비가 다시 보일 정도였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기계를 탈출하고 효율과 가성비를 삶의 기준으로 세우지 말자고 낭만가득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사서고생'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돈달라는 소리가 귀에 쟁쟁거리고, 이 공간을 지켜가려면 나는 자본주의 문법을 좀 따라야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는데, 내가 자연인으로 살 것이 아닌 이상 나는 이 시스템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이다.
나는 이 타협을 '낭만자본주의'라 부르기로 했다. 오로지 돈이 돈을 버는 앞도 안보고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자본주의와, 현실 감각 없어서 이상이 현실 앞에서 말라죽는 '낭만주의' 이 둘 사이의 어디쯤에 여기 모인 우리의 지식과 취향이, 우리의 서사가 정당한 가치로 환산되어서, 이 공간이 작동을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