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부의 좌충우돌 피아노 독학기
피아노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음의 세기에 대하여 배운 기억이 있다.
피아니시모(pp)<피아노(p)<메조피아노(mp)<메조포르테(mf)<포르테(f)<포그티시모(ff)
대략 이런 순서였던 거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음악시간에 배운 ‘여리게’라는 뜻의 이 피아노란 단어가 내가 즐겨 치게 될 피아노라는 악기와 같은 뜻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피아노라는 악기는 원래 ‘피아노포르테’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여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피아노(piano)와 세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포르테(forte)가 합쳐진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피아노라고 부르는 악기의 처음 이름이고, 이 이름이 줄어들어서 피아노가 된 것이다.
피아노 이전의 건반 악기에서는 연주자가 음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으나, 피아노부터는 연주자가 여리게 혹은 세게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약 조절이 된다는 것은 피아노 연주자가 여리게 혹은 세게 연주함으로써 감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나도 피아노에 나름 섬세하게(?) 나만의 감성을 표현하는데, 나의 이러한 섬세한 감성 연주를 남편은 단호하게 컴퓨터가 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럴 때면 내 연주 실력을 탓하기보단 남편을 막귀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내게 피아노는 매력적인 악기다. 일단 아직까지는 내가 그나마 제대로 연주할 줄 아는 유일한 악기이다.
둘째로는 화음을 연주할 수 있어서다. 화음을 연주하면 반주도 가능하고 소리의 어울림 등도 스스로 건반을 눌러 알 수 있다.
셋째로는 음역대도 넓어서 표현 가능한 음이 아주 많다. 물론 아직은 내가 그 넓은 음역대를 모두 아우르며 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넷째는 조율만 제대로 해주면 평균율로 조율되어 있기에 절대 음감이 아닌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연주하며 음감을 익힐 수도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나는 음악을 비롯하여 기타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주변에서 다들 어렵다고 못할 거라고 경고했던 피아노도 나 혼자 배웠는데 내가 못할 것이 뭐냐 라는 요새 말로 근자감이 만땅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이제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의 목소리만큼이나 연주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피아노를 연주하기 전에 나는 음악에 무지해서 보컬의 목소리만 들렸지 밴드의 연주는 아무리 훌륭해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다. 이제 목소리와 연주를 동시에 듣게 되니 목소리와 연주가 함께한 음악을 들으면 감동은 배가 되고 연주만으로도 음악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지식을 얻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합리론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론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합리론은 이성을 중심으로 하고 경험론은 말 그대로 경험을 지식을 얻는 중요한 창구로 본다.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는 경험을 하기 전 나는 좀 합리론 지지자였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처럼 언제나 이성은 인간만이 가지는 것이므로 이성이 인간의 본질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험을 한 이후로 나는 합리론에서 나와 경험론자로 바뀌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성이 작용하는 것이므로 이성 이전에 경험이라는 입장이 된 것이다. 내게 있어 피아노 독학은 단순히 피아노 연주에 그치지 않고 세계관의 나침반을 돌려놓을 만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피아노는 무겁고 부피도 크다. 무겁고 부피도 큰 피아노를 내 친구로 만든 내 경험은 내 생활에서 언제나 무겁고 부피도 크게 그렇게 자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