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하다 폰질
역사상 어떤 인간의 어떤 발명품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스마트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스마트폰을 제외해보면 내가 역사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아서 인지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화폐(자본주의)? 문자(책)? 기계(산업혁명)?
나는 화폐의 발명이야말로 인류의 여러 발명품 가운데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화폐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은 모든 것을 저장하고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을 갖게 되었다. 거리나 시간 같은 자연의 법칙도 화폐가 있는 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 만약 토지가 있다면(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 토지를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팔 수도 있다. 물론 돈만 있다면 한 번 밟지 않을 수도 있는 미국 땅을 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아니다. 당연하게 나는 재산을 팔지 않고 내 자식에서 손자에게까지 물려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재벌들을 보라. 손자에 손자에 손자까지 문제없어 보인다.(손자야 미안해) 이 상황에서 인간이 이기적인 욕심쟁이 되는 것은 일면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더 나아가 요즘엔 돈만 화폐가 아니다. 각종 투자증권, 수익증권, 채권 등등 날마다 화폐의 이름이 새로 생겨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래서 현대 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렇게 금융이 복잡해졌으니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워진 것 같다.
문자도 인류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단 내가 이렇게 내 의견을 정리하여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문자 덕분이다. 문자가 없었다면 인터넷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류의 모든 지식을 말로서만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연결을 시도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물론 현대는 영상의 시대로 접어들어서 문자의 의미가 약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상을 전송하기 위한 모든 정보는 문자로 되어 있다.
문자는 인류의 비교적 최근 발명품이기에 사실 인간의 두뇌에는 문자를 습득하고 이해하고 활용하는 뇌가 존재하지 않았다. 뇌는 문자라는 발명품을 사용하기 위하여 뇌조직을 재편성했다고 한다. (출처 : 책 읽는 뇌 메리언 울프) 갑자기 똑같은 내용이라도 책으로 읽어서는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던 학생이 말로써 설명해주면 이해된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과거의 경험이 확 떠오른다.
기계라는 명명은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지만 여기서 동적(動的) 장치로 의미를 한정하고 주변을 살펴보아도 나는 기계 없이는 도저히 생활할 자신이 없다. 집 안의 청소기, 세탁기를 비롯하여 집 밖의 버스, 지하철, 자동판매기 등등 현대 사회는 기계와 함께하는 사회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도 기계로 만들었을 것이고, 내가 쉬고 자는 집도 모두 기계 없이는 짓지 못할 것이다. 기계는 인간 노동력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인류가 물리적 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혁혁한 일등공신이다. 현대 사회는 기계로 만들어진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인류의 삶을 재구성한 발명으로 위의 3가지 외에 나는 스마트폰을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 들어 AI도 많이 회자되곤 일반 시민으로 느끼기엔 아직 재구성이 본격화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이미 본격적으로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애어른을 막론하고 '폰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폰한다'는 신조어는 물론 전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폰한다'는 말은 전화한다는 의미로는 아예 사용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하는 것을 폰한다고 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폰하는 것을 보면 주로 '게임' '검색' '웹툰 혹은 웹소설' '채팅 또는 sns' '쇼핑'이다. 이렇게 폰하는 것을 명사로 폰질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사용하는 -질은 접사이다. 인터넷 사전에서 접사 -질을 찾아보면,
-질11 단어장 저장 [접사]
1.‘그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2.‘그 신체 부위를 이용한 어떤 행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3.직업이나 직책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폰질'에서 -질은 1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질로 마감하는 말은 3의 의미가 더해져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도둑질, 장난질, 전화질 등 접미사 -질이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서방질, 계집질 등의 단어를 살펴보면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그나마 중립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해녀가 하는 물질 정도이다. 요즘엔 재평가받는 추세이지만 물질이란 단어도 해녀의 일을 높여서 말했던 단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런 전제를 생각하고 본다면 '폰질'이란 단어가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에서 '폰질'을 검색해 보았더니
이렇게 자신의 스마트폰 중독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폰질을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자신의 생활을 방해하지만 끊기 힘든 일로 생각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심지어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기사도 보였다.
요즘 중국에서 새로 생긴 신조어로 저두족이란 단어가 있다고 한다. 폰질을 하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중국 통계로 90년대 이후 출생자의 60%가 스마트폰 중독이라니 우리나라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두족 부모는 폰질에 빠져 자식을 돌보지 않고, 저두족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하게도 사고의 대상이 되고, 범죄의 표적이 된다.
화폐나 문자나 기계가 세상으로 나왔을 때도 이렇게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잘 알려진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르는 걸 보니 그랬을 것도 같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영향력도 긍정과 부정 가운데 하나만을 가지지는 않는 법이고 긍정과 부정은 사회속 개인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니 말이다. 인간은 발명품들의 부정적인 면들을 극복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으니 스마트폰의 부정적인 면도 보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부정적인 면들로 스마트폰을 버리기에 스마트폰은 긍정적인 면이 너무도 많다. 스마트폰은 그 안에 화폐를 담았고, 문자와 영상을 담아 인류의 지식과 지혜를 축적하고 인터넷을 바탕으로 인간을 연결하며, IoT라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기계를 움직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도 내 손안에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에디슨은 말하고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고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류는 스마트폰을 통한 스스로의 삶 재구성을 멈출 생각이 없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