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이 사용하는 언어가 알려주는 그의 세계관
최근 경향신문과 jtbc 뉴스룸 기사에 따르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촛불 든 광장 민심이 초기보다 약간 변질된 면도 없지 않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평범한 아줌마이니 un 사무총장까지 한 반기문씨가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반기문씨는 기사에 따르면 “(집회에) 가보지 않았지만 TV 화면에 보면 (집회 성격이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훨씬 똑똑한 사람 수준에서 평가될 만한 사항이 아니다. 집회에 가보지도 않고 언론에 자신있게 자신의 느낌을 말할 정도면 이건 공맹의 수준에서 평가될 만한 것 같다. 나는 집회에 거의 참석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고, 집회 시간이 길어 내가 몇 시간 함께 있던 집회를 뭐라 평가하기 힘든데, 반기문씨는 "TV 화면"으로 보고 언론 앞에서 "변질"이라고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 그는 "난 사람"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IQ를 가진 것 같다.
내가 학교에서 또는 책으로부터 배운 바에 따르면 생명체는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생명체가 환경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지구상에 다양한 생명체의 스페트럼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인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탄생도 인간의 탄생도 생명체와 환경간의 능동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나는 다윈으로부터 배웠다.
따라서 촛불집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볼 때, 촛불집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촛불집회는 능동적 상호작용의 결과가 아니고, 고로 생명체의 일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촛불집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의 응답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마땅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기문씨는 촛불민심 변화를 변질로 보는데 이는 반기문씨가 촛불집회를 보는 자신의 세계관을 잘 나타내준다.
"변질"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이 환경과 상호작용으로 나타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변화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다. 그러나 변질이란 단어는 그 단어를 말하는 사람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가지중립적이지 않은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반기문씨가 사용한 이 단어 "변질"에서 나는 반기문씨의 세계관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