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부의 좌충우돌 피아노 독학기
모든 것은 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의 습관 때문에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때 동요병용곡집 한 권과 뭔지는 잘 왠지 끌리는 마음에 반주에 관한 책 시리즈 5권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나는 시리즈로 되어 있는 책은 대게 모두 주문하는 습관이 있다.
며칠 후에 책이 배달되었다. 일단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요병용곡집은 표지도 예뻤고, 내용도 그런대로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한글이 없었다. 나는 한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피아노 기본서도 한글이 많은 것으로 선택하지 않았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반주 기본서는 일단 한글이 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잴 것도 없이 일단 반주 기본서를 쳐보기로 했다.
반주 기본서를 치려고 맘은 먹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하루 정도를 두 아이와 씨름하며 살림하며 나름대로 시간 내 피아노 앞에서 열심히 연습한 끝에 저녁 무렵 첫 장의 동요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첫 장을 쳤을 때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기억하기로 첫 장은 '뻐꾸기'였다. 왼손 반주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솔미 솔미 레도레도 레레미파레 미미파 솔미 솔미 솔미 파미레도
이렇게 치면 뻐꾸기란 노래는 끝이 난다.
왼손 반주란 '솔미' 하고 오른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왼손으로 오른손으로 친 건반 왼쪽에 있는'도' 만 치면 되었다. '레도레도'를 오른손으로 칠 때면 왼손으로 아래'솔'을 찾아 누르면 된다.
그런데 '솔미'하고 오른손가락이 움직였을 때 때맞춰 왼손으로 아래'도'를 쳤을 때 감동이 내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학창 시절 피아노 치는 친구들의 오른손 왼손이 피아노 위에서 따로 노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묘기처럼 여겨졌던가. 그런데 내가 지금 서투르나마 묘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 피아노 기본서를 뒤로 하고 어린이 반주기본서만 열심히 치기 시작했다. 반주기본서에 나오는 곡을 치니 피아노 기본서를 칠 때와 같은 암담함은 없었다. 일단 동요는 대부분 고전적인 것들이 많아서 나도 아는 것이었고, 신세대 동요는 딸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해결되었다.
오른손 멜로디를 얼추 알고 치니 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나는 피아노에 점점 재미를 붙여 갔다. 그리고 재미가 있어서 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이때부터 피아노는 내게 과제가 아니라 놀이가 되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나도 피아노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배웠을 것이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어려서 친구 따라 갔던 피아노 학원이 생각났다. 피아노 선생님은 30센티 자를 세워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내 친구 손가락을 때렸다. 내 친구는 그렇게 맞으면서 피아노를 배웠고, 지금은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나도 피아노를 그렇게 접했다면 지겨워했거나 재미를 못 느꼈을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피아노를 배워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니 얼마나 행복하냐 하고 생각을 바꿨다.
열심히 치다 보니 악보에 나와 있는 한마디 당 '도' '솔' '파'처럼 왼손 한 번만 치는 단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음엔 한 마디당 '도미솔'을 한꺼번에 '솔시레'를 한꺼번에 '파라도'를 한꺼번에 치는 단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걸 책에서는 화음이라고 불렀다.
화음이라? 내가 다른 건 다 안돼도 한자엔 좀 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화음이라 함은 '잘 어우러지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도미솔> 말고 <도미파 >세 음을 동시에 쳐 보았다. <도미솔>보다는 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다음으로 <파라도> 세 건반을 잘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솔시레>도 건반 위에서 동시에 눌러보았다. <도미솔>도 <파라도>도 <솔시레>도 피아노 건반 위치상 모두 흰건반을 하나씩 건너서 있는 소리였다. 나는 뭔가 규칙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표현하자면 음정이 뭔지도 모르면서 음정이란 것을 조금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사실 피아노 기본서를 첫째권만 겨우 나 홀로 보고 반주기본서를 구입한 후로는 제꼈기 때문에 음정이 뭔지 잘 몰랐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기억이 얼핏 나지만 앞에서 말했듯 내가 기적의 학생이어서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사실 '음정' 두 글자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피아노 기본서를 다시 찾아보니 음정에 대하여 나왔는데 음정이란 두음 사이의 거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엔 이 정도만 알고 넘어갔다. 음정이 두음 사이의 거리라는 것을 안 것만 해도 당시의 나에겐 대단한 수확이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