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줌마의 좌충우돌 피아노 독학기
짧다면 짧고 길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9개월을 돌이켜보면, 나는 음악에 관한 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수준에서 피아노를 시작하였다. 사실 지금도 그때에 비하여 별반 나아진 것은 없다. 음악 이론 수준은 여전히 초등학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학년은 탈피하여 지금은 고학년으로 올라갔다. 즉 피아노는 꼭 음악에 대하여 정통하여만 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것들은 그냥 악보에 나와 있는 대로 건반을 누르면 된다.
피아노를 전혀 모르던 몇 개월 전 나는 피아노를 치려면 악보를 음악시간에 배운 것과는 다르게 보는 법이 있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가 피아노가 있으면 쳐보라고 한 일이 종종 있다. 그때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못 쳐. 악보 보는 법도 잊어버렸어."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무슨 피아노 악보 보는 법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배워 보니 악보 보는 법은 그냥 음악시간에 보는 그대로였다. 나는 처음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기로 맘먹고, 책을 들었을 때 피아노 악보 보는 특별한 법이 있는 줄 알고 정신 차려 책을 읽었다. 요즘 책에는 악보에 있는 음표에 대응되는 건반을 일러스트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데, 모두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그대로였다. 기적의 학생인 나도 악보 보는 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때 그 음악에 정통했던 친구들은 왜 악보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말한 것일까? 정말로 궁금하다.
어찌 되었건 악보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대로 보면 된다. 오선에 높은 음자리표가 있고, 그 오선 아래 덧줄에 있는 음이 가온 도이다. 피아노에서 가온 도는 피아노 열쇠 구멍 근처에 있다. 열쇠 구멍이 없는 피아노라면 대강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에 위치해 있다. 검은건반 두 개가 나란히 붙은 흰건반 가장 왼쪽이 도 건반이다. 도부터 오른쪽으로 레미파솔라시도가 된다. 다시 도가 되는 건반은 당연히 검은건반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왼쪽 흰건반이다. 피아노는 이렇게 도가 좀 많다. 굳이 세 보면 7개의 건반이 도다. 오른쪽 마지막 것까지 합하면(거긴 검은건반이 없다) 8개다. 다행히도 나는 이 정도를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는 너끈하게 안다.
중요한 건 이 정도만 알면 피아노를 시작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설사 이 정도를 모른다 하더라도, 책에 친절하게 이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다. 얼마나 바람직한 세상인가? 나는 사실 피아노 책이 이 정도로 친절할 줄은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러나 책은 나의 선입견이 미안할 정도로 쉽게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어른 이어 서그런지 오른손만으로 치는 피아노는 진도가 빠르게 나갔다. 왼손은 첫 번째 피아노 책에서는 거의 오른손 멜로디와 같은 멜로디를 치기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피아노 기본서 한 권은 금세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기본서를 펼치니 한 숨이 나왔다. 재미가 없었다. 처음엔 피아노를 배운다는 기분 하나에 열심히 피아노 건반을 눌러 댔지만,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이러다 오른손 왼손 따로따로 건반을 눌러대는 멋진 피아노 치기는 언제 하나? 이 생각이 들자, 머나먼 길을 떠난 나그네의 심정이 가깝게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낮은 음자리표가 나오자 포기라는 글자가 온 머리를 맴돌게 되었다. 높은 음자리표는 아주 익숙한 악보였는데, 낮은 음자리표 악보는 모든 것이 헷갈렸다. 오선에 낮은 음자리표만 있으면 나는 늘 계이름을 세어야 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사실 나는 이 전에도 낮은 음자리표를 알고는 있었다. 학교에서 배워서. 그런데 딱 낮은음자리표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고, 어디가 도인지, 레인지, 미인지, 이런 건 도무지 깜깜했다.
그런데 이제 꺾어진 30이 넘어, 새롭게 낮은 음자리표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에 피아노 건반을 꽝꽝 쳐대고 싶었다. 낮은 음자리표를 오선에서 볼 때마다 새로웠고, 계이름을 셀 때마나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낮은 음자리표를 만들려면 높은 음자리표와 똑같게 만들 것이지. 이렇게 낮은 음자리표 만든 사람을 원망도 해봤다. 그러나 약 오르게도 그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절망을 하고 있을 때 피아노를 부전공한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피아노 독학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바로 그 이웃이다. 그녀 왈
"난 계이름 다는 거만 일 년 했어."
확 깼다. 일 년은 해야 익숙해지는 것이 낮은음자리표라니. 일 년 동안 계이름 달면서 배워야 하는 피아노라면 포기하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찼다.
이때 반주 기본서를 접하게 된 것이다. 반주 기본서에서는 코드를 가르쳐 주었다. 코드는 낮은음자리표를 볼 줄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게 된 왼손 반주법이었다. 그리고 코드는 '어울리는 소리' 즉 화음의 영어였다. 나는 이 코드를 알게 되면서 피아노를 즐기면서 천천히 배우게 되었고 남들이 보기엔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