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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ple life Jan 03. 2020

나의 1조 몽상기 2

이불 밖은 위험해

일조란 돈을 생각하며 생활하니 얼마 전까지 맘에 드는 몇만 원짜리 백화점 블러셔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하던 내가 몇 백억을 위해 목숨을 거는 드라마를 찌질하다고 여기며 보게 되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제 나는 일조의 청년 백수이니까! 그리고 일조의 청년백수인 나는 오래전부터 되고 싶었던 히키코모리로 살기로 결심했다. 도대체 돈이 있는데 내가 위험한 집 밖으로 왜 나가겠는가?

  

난 돈 있으면 모든 알바에서 손 떼고 집 안에 콕 처박혀서 해가 중천에 뜨면 일어난 후, 왓차나 넷플릭스를 커다란 티브이나 모니터에 연결해서 보고 싶은 영화나 프로그램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감상한 후, 출출할 때 배달앱을 켠 후 딱 땡기는 음식을 먹는 잉여로운 삶을 원한다. 난 게임을 자주 하진 않지만 최신형 게임용 의자와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 VR헬멧 등을 모두 장만할 테다. 왜? 난 돈이 많으니까 끝없이 잉여로운 삶을 위한 만약을 대비하는 거다.

내가 피곤해서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게으르다는 잔소리를 퍼붓는 부모님 집에서 내가 꿈꾸는 이런 생활을 한다면 우리 엄마는 나를 구박하다 못해 호적에서 팔 수도 있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나는 일단 독립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돈이 있는데 사사건건 간섭과 잔소리를 들으면서 부모님 집에서 살 까닭이 없다. 당장 집을 알아봐야지.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멋진 집에서 커다란 모니터로 남과 함께 보기 민망한 각종 영화를 자유롭게 감상하고, VR 게임을 하는 나 자신이 그려졌지만 그런 나는 내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일단 집을 알아봐야 한다. 나는 돈이 많으니까 빌딩 하나를 통째로 사서 내 집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빌딩은 외벽을 칠한다거나, 엘리베이터 점검 등의 관리를 해야 하고, 이렇게 빌딩 집 관리를 위해 외부 사람들과 만나는 건 외부와 일절 차단을 원하는 히키코모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난 돈이 많으니까 내 스타일대로 살 수가 있다. 빌딩은 탈락이다.


나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단독주택은 어떨까? 새콤 같은 시큐리티 서비스로 신청하면 도둑이 들어와도 안전할 거 같고, 난 돈이 많으니까 정원에 연못이 있는 마당 깊은 단독주택, 그렇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단독주택도 관리가 필요하다. 마당이 있으면 쓸어야 하고, 정원이 있으면 정원사도 필요하고, 집도 사계절에 따라 보일러 수리 등의 관리가 필요할 거 같다. 난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히키코모리가 되고 싶지 관리 안된 폐허 속에서 살고 싶은 건 아니다. 이렇게 갈등 상황에선 대세를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아파트,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관리실에서 관리 다 해주니 관리비만 자동이체 걸어 놓고 문만 열지 않으면 외부와 단절되는 히키코모리의 삶에 가장 적합한 주거형태는 아파트였던 것이다. 일단 아파트로 결정한 후 사는 곳은 당근 강남이지. 나는 엄청난 부자니까. 그런데 내가 사람들 만나기 피곤하고 싫어서 히키코모리로 박히려 하는데 강남엔 사람들이 버글버글하다. 강남 말고 나 같은 부자가 살만한 동네가 있을 텐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돈 많은 부자들이 사는 곳 가운데 성북동, 평창동 등이 있는데 이곳엔 아파트가 거의 없다. 더 찾아보니, 아파트 있는 부자동네로 용산구 한남동이 딱 들어왔다. 한남 더힐 아파트. 70억이면 살 수 있구나. 그래, 여기야!


그런데, 한남 더힐 아파트로 이사 가서 독립한다고, 부모님께 말해야 하나? 내가 1조 청년백수라고 부모님께 털어놓아야 할까? 내가 1조 청년백수라고 부모님께 털어놓는다면 우리 부모님 반응은 어떨까? 우리 부모님이 자낳괴나 돈미새는 아니지만 왠지 청년백수인 나한테 1조를 관리하게 둘 거 같지 않다. 로또에 당첨된 후 부모 형제지간에 원수 되는 상황을 뉴스에서 숱하게 봤는데 내가 그렇게 뉴스를 장식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이걸 행복한 고민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해결 난망의 상태에 빠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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