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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붓한일상 Jan 16. 2024

식탁 위 고양이 한마리

라라크루, 화요갑분

준이는 스토리를 만들면서 노는 걸 좋아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영화 [나 홀로 집에2]를 보고나더니 집안 구석구석을 호텔로 설정하고, 자신은 호텔리어, 엄마는 주방장, 손님, 청소부 등등 매일매일 호텔놀이를 했다.  방문마다 1호, 2호, 3호라고 적힌 포스트잍을 붙이고, 부엌 여기저기에도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잍에는 준이의 상상의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그 전에는 마트 사장님이 되어 거실을 장악했고, 어느 날은 안경점, 어느 날은 가방공장, 어느 날은 스포츠용품점… 이 모든 놀이에는 자신이 만든 소품이 항상 있다. 미술학원에서 가방을 만들어오고, 야구 놀이 장난감을 만들어오고… 때로는 미술학원을 그만둬야 이 놀이가 끝나려나 싶다가도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이를 만들고 공간을 구성해보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겠지, 언젠가 이 짓(?)도 끝나는 날이 오겠지 하며 같이 놀아주곤 한다.


오늘 식탁 위에는 작은 고양이 인형이 놓여져 있다. 준이의 고양이 사랑은 해마다 다른 모습을 한다.


6살 때는 자신이 고양이라며 집에서 야옹야옹 소리를 내며 택배 상자로 고양이 집을 만들더니 그 안에 쪼그리고 들어가 앉아있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꼬물꼬물 기어와 다리를 긁고, “나는 냥냥이예요~하면서 꼬물거렸다. 거실을 뒹굴고, 기어다니느라 매일 청소기를 돌리며 저리가라고 귀찮아 했던 기억이 있다.


7살 때는 친구들과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츄르를 먹이고, 편의점에서 고양이밥을 사서 나눠주곤 했다. 어느 날은 다이소에서 고양이 장난감을 사서 동네를 다니다가 고양이를 만나면 방울소리를 내면서 놀아줬는데 새끼고양이가 장난감을 휙 낚아채더니 와다다 도망가버린 날도 있었다. 한여름에 아주 작은 새끼고양이었는데 얼마전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금새 자라 덩치큰 고양이들이 되어 있었다.


8살이 된 요즘은 얼마 전 선물받은 스트레스 해소 말랑이 인형을 위한 고양이집을 만들더니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고, 거실로 가지고 나오고 여기저기 바쁘게 옮기며 놀고있다. 말랑이 인형은 치즈냥이 같은 색깔에 아주 탱탱한 재질인데 수학 숙제를 할 때 꽤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문제를 풀다가 잘 안풀리면 고양이 얼굴을 누르고 뭉개고 난리도 아니다.


오늘은 미술학원을 가는 날. 출발하기 전 부터 고양이 집을 만들겠다고 수선을 떤다. 학원에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글루건으로 이것저것 붙이고 꾸며 함박 웃음을 지으며 들고나오겠지. ㅋㅋ 진짜 고양이를 키워야하나 라고 아주 잠깐 스치듯 생각했다가, 고양이가 있는 카페에 갔다가 며칠동안 옷에서 털을 떼어냈던 기억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어본다. 사실 강아지며, 고양이며 준이는 옆에 다가가는 것도 무서워한다.


호텔 놀이가 드디어 끝났다고 기뻐했는데 금새 고양이 장난감에 빠진걸 보면, 다음에는 어떤 장난감이 식탁 위에 올라올지, 엄마에게 어떤 역할을 해달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준아, 식탁에서는 맛있는 것만 먹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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