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넘고, 강을 건너 이제 마른 땅이 나오겠지 기대했는데 눈 앞에 늪이 펼쳐졌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발은 깊은 진흙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 될텐데 길은 하나 뿐, 갈 수 밖에 없는 길.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발을 내밀 것인가, 오던 길을 되돌아 가겠는가.
축제를 준비 하고있다. 날짜는 4월 19, 20일. 한달 남았다. 실행 업체는 정해졌고, 예산보다 넘치는 과업을 가지치기 하며 정리했다. 현장에 나가 프로그램 별 위치도 정했다. 모든게 순조로운 ‘듯’ 했다. 홍보물 디자인도 정해졌으니 이제 한달동안 열심히 홍보하고 제작하면 되겠다. 하기 싫은 축제였는데 꾸역꾸역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 고 생각하던 중… 문제가 생겼다.
지정기부금을 받을 예정이었다. 여러군데 제안했는데 한 군데에서 기부 의사를 주었고, 금액도 사용 계획도 다 세웠다. 이제 서류 절차만 남아 있었는데 담당자와 소통하던 중 “공익법인 목록에 없으신 것 같은데 확인해주세요.” “………”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2021년에 나와 팀원이 신청 절차를 마무리 하고 공익법인 지정이 된 후 업무를 경영지원팀에 넘겼는데 확인이 안된다니… 경영지원팀에 확인해보니 이미 2023년 12월 31일 지정은 만료가 되었고, 재지정 신청을 하라는 안내지가 와있어서 다음 주에 있을 이사회에서 결산이 완료되면 신청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재지정고시는 6월에 나온다고 한다.(으악)
하아… 여러 사람들이 기부금을 받겠다고 애를 썼는데, 그 상황을 옆에서 듣고 알고 있는 경영지원팀은 단 한명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이렇게 쎄게 뿌리나… 기부를 하겠다고 한 기업에는 무슨 망신인가. 경영지원팀장은 담당자가 작년에 퇴사를 하고, 그동안 기부금이 없었어서 기간 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는 변명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 담당자 없으면 일도 사라지는 건가, 왜 팀장은 챙기지 않았냐는 질문이 목구멍을 넘어 입까지 올라왔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누구를 탓할 틈도 없이 기부금을 성사 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세무서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재지정고시가 나오기 전에 기부금은 받고 지정 후 상반기 분을 소급하여 기부금 영수증 처리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기부를 하기로 한 곳에서는 지정이 만료된 상태라면 기부는 어렵다고 답을 받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기에 서운함은 없었으나 이미 축제에서 굵직한 프로그램에 기부금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습을 해야했다.
그래도 경영지원팀장은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여기 저기 전화를 걸며 알아보는 노력을 했다. 몇가지 해결책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직접 해결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해야했고, 설득해야 하는 방법들. 그런데 본부장은 대표이사 앞에서 경영지원팀장이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며 치켜세운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어깨뽕을 심어주는 데에 동참하기로 한다.
이 축제는 정말 하기 싫은 사업이다. 육아휴직 전에는 다른 팀에서 담당하던 것이 돌아와보니 우리팀에 짐짝처럼 와있던 사업. 이렇게 하기 싫었던 사업은 없었는데, 온 마음을 다해서 하기 싫은 마음이 넘치고 흐른다. 그래도 애쓰는 팀원들이 있기에 나는 물러설 수가 없다. 마음을 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담지 않으니 하기가 싫고, 일은 진도가 안나갔다. 그래서 요 며칠 애를 썼는데 오늘 같은 날이면 마음속에 품은 사표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해야한다.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늪이다. 발은 내딛었고, 점점 빠져든다. 멈출 수가 없는 축제 제작. 내가 빠진 늪에 관객들을 끌고 들어가 같이 빠지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늪에서 나와 푸르고 뽀송한 잔디를 걷고 싶다. 나도 축제를 즐기는 것만 하고싶다. 이 축제가 끝나고 나면 또 10월에 진행할 축제를 준비해야한다. 징글징글. 관객들은 알까…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고된 하루를 보내는지.
늪을 지나고 나면 뭐가 나올까. 무서운 호랑이 한마리 만난다면 등에 태워달라고 해야지.
한줄 요약 : 지겨운 인생 ㅋ
#라라크루 #넋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