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하는 한계와 문제들

언젠가 네게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길

1
사관학교를 다닐 때 말야 일 년마다 얼마 간의 돈이 책을 구입하라고 지급 되었었어
근데 나는 그 돈으로 몽땅 시위하듯 영화 관련 책들을 샀었지
그 많은 책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책이 있었는데 뭐냐면..
영화 감독들의 몇 줄 짜리 생애와 작품 목록 따위를 모은 인명 사전 같은 거였어
그 당시의 나는 감독들의 데뷔 나이와 사는 동안 과연 몇 편의 영화를 남겼냐에 제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간혹 너무나 좋은 영화를 찍었지만 사는 동안 고작 몇 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떠난 감독을 발견하면
너무나 속상해서 시간과 공간으로 다 먼 내가 마음이 다 쓰렸지
왜 그랬을까 왜 그는 더 부지런히 창작하지 않았나
삶을 표현하지 못하고 삶을 설명하는 수치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다만 나에게 따질 수 없게 만들 강력하고 단순한 그런 숫자들에 어린 나는 집착을 했던 것이지
사는 동안 그가 끝없이 무엇을 품고 그리고 그것에 답을 하려 하고 그러한 것이 바로 그 사람이 표현하는 최고의 삶인 것인데
나는 고작 몇줄을 더 채울 쓸모없는 제목들에만 어리석게 집착을 했던 거야

2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 넘어 보려 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고안한 최고의 재미이다
세상의 재미는
어려움을 설계하는 일에 있다
많은 이에게 좌절을 주어야만 사람을 모으는 게임의 위치를 가질 수 있다
매번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가위 바위 보처럼
우리는 완전한 것보다는 좌절의 양념 맛에 중독이 되어 있다
매번 들어가는 골을 응원하러 경기장에 찾는 이가 있을까
만약 그러한 경기가 있다면
우리는 금세 또 다른 한계를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다
얼마나 멀리서 넣었는가
얼마나 화려하게 넣었는가
그 또한 우리가 몰래 넣고 만 마법의 가루와도 같은 한계들
문제때문에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없으면 못 산다
삶이 하나의 문제라고 치면
우리가 해결을 하고 나면 우리는 삶을 지나쳐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삶을 지나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죽는 일 밖에 없다
스무살에 엄청난 성공으로 삶이란 문제를 우습게 보게 된 이는
남은 60년을 그 우스운 삶과 함께 살아야 한다
더이상 그에게 좌절이라는 달콤함을 맛 보이지 못하는 삶은
그에게 있어 얼마나 괴로운 것이냐
삶의 재미는 좌절하는 것에 있다
삶의 의미는 무너지지 않는 것에 있다
좌절없는 삶도 무너지고 마는 삶도 아닌
끈기있게 부딪히는 삶
다만 어렵기에 나조차 그리고 당신조차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삶
80년을 내내 실패하는 삶
그렇지만 80년을 내내 무엇에 홀린 듯 몰두하는 삶
성공은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다만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실패라면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한 무엇이 우연의 결과로 세상에서 성공의 한 항목으로 뽑힌다 해도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찾아보면 죽기 전까지는 절대 성공 못 할 문제들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를 갖는 일
자신을 내팽겨치지도 않고 끝없이 조만큼씩만 도망가는 문제를 찾아 품는 일
남들에게 맡기지 말라
그렇다면 당신은 무너질 것이다
내가 뭘하면 되나요?
내가 당신을 위해 뭘하면 되나요?
라고 묻지 말라
스스로 사랑하는 증명하고
스스로 성장을 증명하고
스스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그리고 사는내내 달콤하게만 실패하라
성공때문에 살고 실패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실패때문에 살아지고 성공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맞는 일인지 나에게 묻지 말라
나는 그러한 것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다만
당신이 하는 일은
당신이 하는 동안은
당신에게 아주 좋은 것이 될 것이다

W 심플.
P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중.

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