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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18. 2020

오늘 프랑스에서는 15일간의 이동제한령이 실시되었다

긴장된 외출 후에 오랜 낮잠을 잤다

오늘 정오를 기해 프랑스 전역에서는 15일간의 이동제한령이 실시되었다.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몇 가지의 목적들 이외에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가족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제한의 대상이 되었고 당연히 프랑스 사람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카페와 바, 공원에서의 여유 또한 제한의 대상이 되었다.


건강과 관련된 이동,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의 출퇴근, 필수적인 물건들을 사야 할 경우, 아이와 노약자 돌봄을 위한 이동, 반려동물의 산책과 본인의 건강 유지를 위한 근거리에서의 운동을 위한 외출의 경우들은 제한의 대상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배포한 사유서에 개인 정보와 해당 이유를 기재하고 사인을 한 후 그를 꼭 지참하고 외출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외출을 했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렸을 경우 38유로에서 135유로의 벌금이 부가된다. 



이동제한령이 실시되는 동안은 학교 근처에 있는 한국 마트까지 가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서 오늘 정오가 되기 전 한국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물품들을 미리 사오기로 했다. 학교가 쉬는 중이라 새벽까지 깨어있는 게 습관이 되어 혹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 할까 오랜만에 알람을 몇 개나 맞춰 두고 잠에 들었었다. 다행히 긴장한 탓인지 알람이 울리자마자 천장에 닿은 낮은 햇빛이 뚜렷히 두 눈으로 들어왔다.


혹시 12시를 넘길 경우를 대비해서 수기로(프린트가 없을 경우 수기로 작성) 외출 사유서를 작성해서 백팩에 넣고 여행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여권도 꺼내 백팩에 함께 넣었다. 


출근 시간에서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인데도 거리는 새벽처럼 고요했다. 날씨마저 흐린 잿빛이라 거리에는 일종의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제 마크롱 대통령이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라며 강한 어조로 당부를 해서인 지 며칠 전인 주말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유지해주려고 했고 최대한 몸도 시선도 자신의 곁에다 당겨 놓고 있는 듯했다. 높은 톤으로 주고받던 인사나 수다들이 사라지니 아침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주는 그 성가신 안정감이 생각보다는 훨씬 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안의 공기는 더욱 무거웠다. 사람들은 텅 빈 객차의 구석구석으로 흩어졌고 서로를 슬쩍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려 어느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려 애를 썼다. 내 주변에 가까이 선 사람이 하나 없는데도 나는 의자에 등을 붙이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몸과 마음이 쬐여듬을 느꼈다. 하나하나 지나가는 지하철역을 일일이 셀 정도로 이 답답한 공기에서 얼른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찼다.


똘비악 역은 우리 동네와는 달리 이동제한을 준비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꽤나 보였다. 프랑스는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마스크가 대중적인 한국과 달리, 시위에서나 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크고, 그래서인지 필요한 상황에서 모든 필요를 충당시킬 만큼 비축도 생산도 안되어 있다 들었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된 마스크보다는 어떻게든 심리적인 방어막이 되어 줄 캐릭터 마스크나 면 마스크, 부직포 마스크, 공사장 마스크들이 많았다. 마스크가 없는 분들은 스카프나 목도리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었다.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장바구니를 들고 바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가득한 장바구니에 손이 여유가 없음에도 강아지들을 함께 데리고 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조만간 사람의 일 때문에 함께 고초를 겪어야 할 강아지들이기에 미리 조금이라도 숨을 쉬게끔 해주려는 것 같았다. 역 주변에 있는 약국과 정육점, 빵집 그리고 마트에는 꽤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매너보다 두배는 넓은 간격으로 서로를 스쳐가는 사람들. 긴 줄 옆을 스쳐갈 때 자신들도 모르게 숨을 참고 걸어가는 사람들. 조금 더 위험한 사람을 찾아보려는 사선의 시선들. 날씨처럼 모두에게 씌워진 언짢음.


사람은 실제로 겪지 않은 일로도 쉽게 무너진다. 너무나 약해서 온갖 것들에 미리 취하고 그 모든 것에 일일이 두려워하며 움츠려 들게 설계가 되어 있다. 나의 가는 팔과 다리 그리고 바라보면 아찔하게 연약한 내 목덜미.


한국에서 자극적인 멘트들로 기사가 나가서 가족들 친구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실제의 감각이 착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더 깊은 걱정을 해주었다. 


혼자가 아니기에 더욱 신중히 대사관과 프랑스 정부의 발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그 어떤 곳에서도 하지 않은 발표들이 한국의 공영방송의 뉴스에서 나가고 있었다. 집단 감염을 우려하여 대형 기숙사들에 거주하는 하는 학생들에게 일시 귀국을 하거나 프랑스 안에 다른 거처가 있다면 그쪽으로 이주를 하라고 권고했다는 내용을 가지고 프랑스가 자국을 폐쇄하고 모든 유학생들에게 강제 귀국을 종용한 것처럼 자극적으로 뉴스를 내보냈다. 많은 사람들은 공포를 좋아하고 공포로 얼어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공포를 비교하며 그 차이를 이용하길 좋아한다.


저긴 몇 명이 더 죽었다. 저긴 몇 명이 또 죽었다. 안타까움보다는 안심이, 안타까움보다는 조롱이 더 먼저다. 얼마 전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한 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우연히 봤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에서 하고 있는 조치들은 이미 실패한 것인데 사실을 인정을 못해서 객기를 가식을 부리고 있는 거라며 차라리 모든 것을 인정하고 최악을 대비하라고 한 영국 총리의 발언만을 솔직하다고 치켜올렸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를 조롱했다. 다른 나라를 조롱하며 그 나라에서 이 시기를 견디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그리하면 자신은 더 안전해지는 걸까.


이탈리아에서 조차 20대의 사망률은 0프로이다. 어쩌면 몇몇 전문가들의 말처럼 (물론 위험한 대상이 분명히 있기에 모두에게 큰일이지만) 젊은이에게는 그저 감기와 같은 거 일 수도 있는 이 파도에 우리 모두가 더 힘겨운 것은 서로가 무심코 하는 서로를 향한 공격들과 차별, 조롱 때문이 아닐까.


마스크를 써서 비웃고 마스크를 안 써서 조롱하고.. 무엇이 맞는지를 떠나서 근대에서 조금도 넓어지지 못한 우리의 마음을 열과 기침보다 더 뼈아프게 확인하는 나날들이다.


사람들의 조롱보다는 이곳, 이 거리들의 사람들도 조심을 그리고 노력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짜릿한 자극보다는 심심한 일상의 소식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내 고향 대구도, 내가 살던 서울도 지금의 파리도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독일도 영국도 미국도 그저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 한 번의 큰 파도에 물을 조금 먹었을 뿐, 소심하게 뭍 가까이에서 소꿉장난 같은 것들이나 하게 될 지라도 우리의 여름은 서로에게 눈부시게 나날로 기억될 수 있길. 어쩌면 이미 늦었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바라본다.


긴장된 외출 후에 오랜 낮잠을 잤다. 해는 비출 사람이 없어서 인지 더 빨리 지는 듯했다. 


드라마를 틀어 놓고 저녁 준비를 했다. 운이 좋게 사 온 마늘을 까면서 물소리 때문에 내용을 놓치는 엠마에게 드라마 속 대사를 반복해주었다.


그래 우린

괜찮다. 


글 이미지 레오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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