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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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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16. 2020

파리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간신히 서로와 함께 산다

https://youtu.be/ETAiJ1_8pNk


금요일 저녁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발표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무기한 휴교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심각해지자 어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오늘 0시부터 생활에 필수적인 곳들을 제외한 모든 종류 상점들을 폐쇄한다고 추가 발표를 했다. 반강제적으로 모든 국민과 거주민들의 자가격리를 실시하는 셈이다. 


유학생들은 하루빨리 본국으로 귀국을 하려는 사람들과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자택에서 머무르기를 택한 사람들로 두쪽으로 나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정부의 바람이고 공항과 비행기가 오히려 더 위험요인에 노출되기 쉬울 수도 있기에 그리고 또 혹 의도치 않게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원인이 우리가 될 수도 있기에 엠마와 나는 차분히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쪽을 선택했다. 가족들은 조금 불안해하지만 한국 또한 이미 겪었던 일이고 어차피 지구의 모든 곳들이 한 번씩은 넘어야 할 파도이기에 머나먼 뭍을 향해 파도에서 끝없이 물러날 것이 아니라 호흡을 가다듬고 파도를 바라보며 안전히 넘을 준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에 있는 5개월 동안 여러 큰 일들이 우리를 닥쳤다. 전면적인 대중교통 파업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파업이 겨우 끝이 나자 바이러스가 땅을 가리지 않고 돌기 시작했다. 마치 이곳이 우리를 밀어내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려울수록 더 오래 붙잡게 되는 게임처럼 우리는 오히려 더 웃었다. 그리고 선물처럼 얼굴을 드러내는 파란 하늘과 회색 빛깔의 구름들 그리고 도시의 낯설고 오래된 얼굴들은 그런 만큼 우리에게 더 소중한 기쁨이 되기도 했다. 그래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이곳에서의 겨울과 봄을 우린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 한동안은 마지막일 수업을 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선생님과 ‘Au revoir’ 가 아닌 ‘À bientôt’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 서로 무사하길 바란다는 덕담을 일일이 나눠주며 학교 문을 나섰다. 거짓말처럼 날은 너무나 파래서 이 모든 일들이 다 꿈처럼 느껴졌다. 구름은 한점도 못 견디고 다 흩어져 버렸고 햇볕은 온 벽에서 튕겨 내 눈으로 몽땅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적어도 일주일, 이주일은 최소한으로만 움직일 것이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공원에 들려 마음을 다잡아 보고 싶었다. 혹시 이 한 번으로 우리가 바이러스에 걸려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이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엠마에게 말을 건넸다. 



튈르리 공원까지 가는 동안 지하철과 좁은 보도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온 몸에 긴장을 했다. 사람들이 우리의 검은 머리를 신경 쓰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 또한 (이젠 눈으로 차별조차 할 수도 없는 바이러스이기에) 사람 그 자체에 긴장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이럴 거면 왜 나왔지?’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일은 그렇게끔 만드는 공포는 그렇게 모두에게서 우리가 우습다고 비웃던 ‘인간’ 의 모습을 금세 빼앗아 간다.


콩코드 광장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한산했다. 끝없이 공원을 돌아나가던 차들의 수도 훨씬 줄어들어 텅 빈 광장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를 온전히 땅에 그리며 하나의 거대한 시계처럼 보였다. 오벨리스크 너머로 보이는 에펠탑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튈르리 공원만틈은 공원 전체가 시간 여행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 안 모든 사람들은 바이러스도 모르는 듯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일상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벌써 반팔을 입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 오랜만의 햇볕에 피부를 내맡기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평소보다 사람들의 수는 확실히 줄었지만, 다들 일상이 건강만큼 소중하기라도 듯 오기로 더 삶의 루틴을 지켜보려는 듯했다. 몇 년 전 파리의 여러 곳에서 테러가 났을 때 두려움으로부터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더더욱 테라스를 찾았었다. 삶이라 하는 것들이 무척 연약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곳 사람들이기에 별거 아닌 것들조차 집착처럼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 그런 것들이 독이 될 수도 있기에 정부에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더 공격적인 폐쇄를 결정했겠지만 고집하면 또 한 고집하는 이곳 사람들이 아닌가.



공원을 조용히 가로질러 이제는 기약 없이 문을 닫은 루브르 박물관을 스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일주일은 가만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햇빛을 맡고 두려움은 바람에 조금 날려주고서 서로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산책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주말부터는 줄곧 집에만 있어야 했기에 기운을 내서 마트에 물건들을 사러 갔다. 행여나 물건들이 벌써 동이 났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고 마트의 사람들이 우리를 적대시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또한 들었다.



마트는 평화롭던 공원에서 풍경과는 달리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화장지와 여러 생필품들은 재고가 많이 남아 았었고 과일이나 채소들도 아직은 풍부하게 진열이 되어 있었다. 다만 이곳 사람들의 필수 식량인 빵과 빠트(면), 우유와 달걀은 재고가 거의 없거나 아예 공간 자체가 텅 비어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며칠 전 쌀을 한 포대나 사두었기에 걱정 없이 신기한 눈으로 텅 빈 진열대를 훑어볼 수 있었다.


트호띠네트에 가득 장바구니를 싣고 끌면서 뒤뚱뒤뚱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역 근처는 이른 퇴근을 한 사람들과 학교를 마친 학생들로 사람들이 꽤 붐비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다시 긴장이 되었다. 지하철역을 막 지나 집 쪽으로 이어지는 사거리에 다가갔을 때 식당 밖 유리창을 물걸레질하던 흑인 청년이 지나는 사람들 때문에 작업을 잠시 멈추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코로나비후스’ 라는 말과 함께 괜한 기침을 해대었다. 이곳에서 두 번째로 듣게 된 저 말. 우리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도 당황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싸늘한 시선에 그늘 민망하게 제 입에 묻은 하얀 침을 손등으로 닦으며 금세 뒤를 돌았고 우리는 그의 등 뒤를 굳은 얼굴로 지나갔다. 과연 동물원의 동물이 된 건 누구였을까. 그에게 무슨 작은 기쁨이라도 있었을까.


사람들은 간신히 서로와 함께 산다. 한국에서도, 나조차도 수많은 것들을 경멸했고 그러면서 또 별거 아닌 나를 간신히 보호했다. 카페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아줌마들, 정치적인 의견이 다른 어르신들, 거친 사람들, 예의 없는 사람들, 기호들.. 이 땅에서도 나는 한동안 매번 피부색이 검은 분들을 보면 놀랐고 나도 모르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하철을 기다렸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거나 할 때마다 긴장을 했다. 아마 나는 입만 다물고 있었을 뿐 그 모든 이에 경멸과 편견을 말하고 말았을 것이다. 


화가 나기보다는 겁이 난다. 인간이라는 얄팍한 껍데기가. 


내가 오랫동안 깁고 다려 온 내 얇은 천조각도 가느다란 바람에 쉽게 찢어진다는 진실에 겁이 난다. 사람은 모두가 배우이다. 우리의 도시는 겨우 시간을 맞춰 한번 정도 연습을 해 본 공연의 무대이다. 


좋은 배우는 인물이 곧 천성이 되지만 서툰 배우는 금세 집중을 잃고 인물을 깨뜨릴 자신의 누런 치아를 드러내고 만다.


나는 원래부터 누군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작고 악한 것이 얼마나 애를 먹였을까. 하지만 지금 나는 나의 얼굴에 책임을 가지고 있다. 내가 손을 들었든 내가 떠맡았든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얼굴을 내 천성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연기할 것이다. 미움은 누르고 사랑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얼굴은 그래야 하니까.


신체는 감정을 만든다. 짠맛이 나면 더 많은 물을 길어와 부을 것이고 그리하여 누가 마시든 상하지 않을 물이 되고 말 것이다. 상처 주지 않는 물은 진실된 것이다. 터가 좋았든, 비가 와서 그리되었든 원망하지 않는 그가 최선을 다해 물을 길어와 퍼 넣었든 상하지 않게 된 물은 진실된 것이다.


아침에 학교를 갈 때 같은 통로에 사는 흑인 여성분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괜히 불편해하실까 봐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시라고 일부러 무릎을 굽히고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 이쯤이면 됐겠지 하고 몸을 일으켜 엘리베이터로 가보니 그분이 손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계셨다. 파리의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양인 두 명과 함께 타는 것을 선택한 사람. 멈칫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억지로라도 이겨낸다. 


그래 사람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간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써왔다. 고쳐 쓰고 싶은 게 참 많다. 


걱정 마 새로 쓰면 되지라며 엠마가 공책을 사주었다.


햇볕이 든 날 창가에 서서 이런 날에도 차를 씻으러 온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지하든 조심성이 없든 위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엠마는 집을 나갈 일이 없는데도 귀걸이를 했다.


예뻤다. 날도 괜찮았다.



글 이미지 레오


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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