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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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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8. 2020

파리가 품은 죽음들 몽마르뜨

그러니 나의 조용한 날들에서 마음아 절대로 울지 마라


창 밖을 보니 나무들이 바람에 혼을 놓은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 5분쯤 달리면 될 길에 또 두터운 패딩을 꺼내 입었다. 이번 주는 비가 드물어 건조해진 땅을 훑은 바람이 눈을 긁어댔다. 작은 모래알들이 다 느껴져 눈을 감다시피 하며 트호띠네뜨를 굴렸다. 풀어진 겉옷 사이로 바람이 몸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더웠다.

시각의 기억보다는 훨씬 더 봄에 가닿은 바람이었다. 마트를 가는 길에 커다란 벚나무가 하나 있다. 얼마 전 몸을 접게 만드는 바람에도 하얀 꽃들이 터져 신기해했는데 오늘 보니 이미 제 무대를 다 마치고 쓸쓸한 퇴장을 하고 있었다.

가을에 이곳으로 와서 겨울을 맞고 또 겨울을 다 보내는구나.


컵에 담고 물만 주었는데 쓰러질 만큼 키를 키우던 파가 생각이 났다. 간단한 마음이면 쉽게 키를 키우고 간단한 마음이면 계절을 듣는 게 아니라 계절을 그릴 수도 있겠구나.

그치만,

그게 참 어렵다.


우리가 애쓰는 그 모든 일들, 조금 더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기발하다고 설레었고 또 들키지 않으려고 감춰왔던 것들, 능력이라는 통 안에 숨겨 둔 빛나는 알사탕들.

하지만 깍두기로 자른 시간들의 끝에 가 서면 결국 모든 행동들이 그저 초에 불을 붙이고 두 손을 비비거나 혹은 꽉 모아 쥐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은

‘제발. 이번에는 제발.’

하게 되는 거니까.

엘리베이터에 탄 버튼에 손이 안 닿는 아이처럼 어떤 확신이나 깨달음 같은 것도 없이 층을 올라서고 또 커다란 실수나 방종 없이도 층을 내려서게 된다.

우리는 결국 키만 컸지 길도 모르는 아이인데. 이제 손에는 엄마의 손은 간데없고, 잘 읽히지 않는 글씨가 적힌 쪽지 같은 것들만 들어 있다. 그러니까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곳은 내가 가야 하는 곳이자 내가 잘못 간 곳.

쪽지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환영한다 잘 왔다’ 해준다면 뿌듯한 마음도 들어 잠시나마 턱도 빼고 쉴 수 있겠지만 ‘미안하지만 이곳이 아닌 거 같다’ 라며 쪽지를 가볍게 토스해 돌려준다면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돌린 채 차가운 문을 밀고 나와 다시 또 뚜벅걸음을 이어야 한다.

내가 주머니에 넣은 보잘것없는 것들은 그들이 가여워 그냥 내 손에 쥐어 준 것뿐이었고 내가 끝내 못 가진 것들은 그들이 쉬이 그렇게는 읽어주지 않았던 것들인 것.

발가벗겨진 채 더 무능해진 채 더 모르겠는 채 나는 처음 보는 길 위를 걷고 있다


https://youtu.be/eVYZT28-7yM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의 파리는 눈이 멀 정도로 하얀빛을 내뿜는다. 짙은 색의 건물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빛이 바래 조금은 노래진 하얀 건물들이라 그런지 이런 날이면 거리가 온통 아찔하게 밝아 오른다.


학교를 마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햇빛이 너무 아까워 마레 지구에 있는 보주 광장에 가보기로 했다. 빅토르 위고의 아파트가 있던 정사각형의 모서리를 따라 담처럼 둘러진 건물들 가운데에 녹색의 잔디와 하얀 분수가 빛나는 보물 같은 광장이 숨겨져 있었다. 구경꾼처럼 똑같은 얼굴을 한 건물들의 뾰족한 지붕 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바람이 불어 분수의 물들이 캉캉을 추는 댄서들의 치마마냥 출렁거렸다.



엠마와 나는 비둘기가 빌려준 낡은 벤치에 앉아 싸온 커피와 마들렌을 먹었다. 세 아이를 산책시키러 나온 아버지가 웬일인지 울음을 터뜨린 막내를 안아 달래고 있었고 동생을 가엽게 바라보다 이내 치진 둘째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울음이 독차지 한 아버지의 시선을 빼앗아오려 애를 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비둘기도 나도 모래를 파는 아이도 하나 다를 것 없이 좋은 햇빛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텀블러를 건네고 받으며 따뜻한 커피를 나눠 마시는 그녀가 곁에 있었다.


딱히 갈 곳이 없었기에 무작정 발길이 닿는 곳을 향해 걸었다. 바스티유 광장을 지나 요트와 작은 배들이 어깨를 맞대고 출렁이고 있는 생마르탱 운하의 끝자락을 스쳐 이름조차 몰랐던 ‘생루이 섬’ 으로 걸어갔다. 바람은 찼지만 햇볕이 좋아 지칠 만큼 걷고 싶었다.



생루이 섬은 모두에게 익숙한 시테 섬 바로 곁에 있는 작은 섬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 곳이다. 생루이 섬으로 놓인 슐리 다리를 건너 바흐예라는 작은 공원에서 섬을 둘렀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센강을 바라보았다. 시떼 섬을 오가면서 보았던 좁은 수로 같은 센 강이 아닌 새들이 연이어 앉았다가 뜨는 제대로 강다운 모습의 센이었다. 


지난밤 비로 물이 많이 불어나 강변의 산책로는 다 잠겨 있었다. 생루이 섬 쪽의 산책로는 완전히 잠겨 내려가는 길이 아예 닫혀 있었고 산책길에 놓인 쓰레기통은 쓰레기 대신 황톳빛 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반대편 마레지구 쪽의 산책길은 반만 잠긴 채 강물이 파도처럼 들락날락하고 있었고 그 경계를 따라 몇몇 사람들이 시크한 걸음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색을 잃어버린 강물 위로 새들의 식사를 방해하려 유람선과 화물선이 끊임없이 스크루를 돌려대고 있었다. 그 너머에 놓인 철교 위로 5호선의 낡은 열차들이 덜컹이며 지나갔다. 우연이 만들어 놓은 그림을 우연히 내가 보았다.


좋았다.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에 고개를 왼쪽으로 꺾어 걸으며 섬의 반대편 끝을 향해 걸었다. 코 앞으로 검게 그을린 시테 섬의 두 얼굴,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다. 벽면에는 복원을 위한 비계가 한방 침처럼 성당의 가슴과 목을 빼곡히 두르고 있었고 그 곁에 노란색이 선명한 크레인이 높게 놓여 있었다.



성 밸런타인데이에 그 핑크빛 하트의 물결 속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서 몽마르뜨 묘지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파리를 내려다보고 싶어 지도만 보고 찾아왔다가 싸늘한 죽음만 놓인 것을 보고 경악한다는 그곳.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곳을 향해 걸었다. 화려한 빨간 풍차와 같은 색의 노골적인 간판들을 지나 깔끔한 아파트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조용한 골목으로 꺾어 들어섰다. 묘지의 문지기라기에는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파트들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소리가 왠지 풀이 죽어 있는 몽마르뜨 묘지가 보였다.



묘지공원 안에는 파리의 시내처럼 비좁은 공간을 다투며 죽은 이들의 아파트가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죽음은 죽었을 때가 가장 비싸고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들의 최고가가 얼마였든 지금은 하나같이 가격이 흙에 가닿은 듯 기울어진 문, 녹슨 십자가, 깨진 석판들이 넓은 공원 가득 쓸쓸한 향내를 피우고 있었다.


까마귀가 비둘기를 몰아낸 곳 검은 고양이가 신기하게 살이 찐 곳, 화려한 얼굴의 조각들이 오묘하게 뒤틀려져 있는 곳. 지붕 삼은 고가도로 위로는 바쁜 이들의 그림자가 영화처럼 스쳐가고 그 아래에는 이제는 상영도 끊긴 듯들 한 수많은 필름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조용히 누워있었다. 


우리의 뒤로 유명인의 무덤을 찾는 몇몇의 여행객들이 책받침처럼 코팅된 안내 지도를 들고 무덤의 이름표를 발굴하고 있었다. 우리의 앞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젠 죽은 가족들의 집까지 관리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한 할아버지가 저는 발로 석관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어느 집 현관 앞에다 환상같이 선명한 주먹 꽃을 놓아주셨다. 그리고는 부러운 듯 그리운 듯 그 집 안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다.


티켓도 안 끊고서 몰래 들어와 영화를 보던 아이는 자신이 완전히 매료됐음에 조금의 죄책감을 느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을 걸었다.



아름다운데 시린 이유는 무엇일까.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은 싸면서도 강력한 구경거리이다. 


해가 떨어져 공원의 채도가 낮아졌다. 더 지친 발을 간신히 모아 불꽃을 튀기며 달리는 지하철에 앉아 우린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https://youtu.be/gEb8MhZSKuU


낮에 뭔가를 정신없이 하다가도 밤이 오면 잠에 들어야 한다. 끝도 못 내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못하고서 그만 잠에 들고 만다.

하루 종일 자야지 했는데 그만 못 견뎌 또 일어난다. 커튼을 열고 창을 짚고 서서 구경을 하고 눈을 다 못 뜬 얼굴 앞에 가 말을 걸고 자잘한 것들을 사러 마트라도 가고야 만다.


큰 것을 하기에 하루는 너무 짧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 하루는 너무나 길다.


다 못 쓴 글들, 내일에는 문득 싫어져 색을 칠하지 않을 그림들.


삶 안의 성공도 내가 한 것이 아니듯 죽음 후의 성공도 나의 뜻을 벗어난다. 사람들은 누군가 부끄러워 제목도 달지 않은 글을 꺼내 출판을 한다. 결국 모든 성공은 폭력이다. 나는 당한다. 나는 성공을 당한다. 


그러니 나의 조용한 날들에서 마음아 절대로 울지 마라. 


글을 쓰는 동안 고향땅에 바이러스가 돌았다. 아침마다 숫자들이 전시되었다. 공격적인 숫자들. 그래 병은 무섭다. 너무 무서워서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아프다. 코로나도 에이즈도 심근경색도 암도 정신병도 다 아프다.


3월이 되자 프랑스에서는 잠잠하던 바이러스가 땅을 가리지 않고 날뛰기 시작했다. 무서운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코호나 비후스’


내 등에 나직이 내뱉은 어느 심술궂게 생긴 어느 할아버지의 말. 

중국사람들을 쳐다보던 내 얼굴은 그 말과 과연 얼마나 달라 있었을까.


무서워서 모두가 아프다. 병도 죽음도 실패도. 

그 무서운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내게 가까이 있다. 


글 이미지 레오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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